미국 텍사스주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유단자' 한인 가족이 성폭행 위기에 처한 현지 10대 소녀를 구해 찬사를 받는 중이다.
19일(이하 현지시간) 텍사스 휴스턴 일대 치안을 책임지는 에드 곤살레스 해리스 카운티 보안관은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한 그룹의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범죄 피해자를 구하러 돌진했다"며 휴스턴 외곽의 '용인 태권도' 관장 안한주씨(59) 가족의 용감한 활약을 공개했다.
지난 18일 오후 4시께 안씨 가족은 태권도장 옆에 있는 상점에서 한 여성의 비명을 들었다. 곧장 달려간 이들은 17세 여성 점원을 성폭행하려던 남성 알렉스 로빈슨(19)을 제압하고 피해 여성을 안전하게 구했다.
곤살레스 보안관은 "경찰관들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태권도 사범들이 가해 남성을 바닥에 누르고 있었다"며 "조사 결과 태권도 사범들이 피해 여성을 가해자로부터 떼어냈을 때, 이 남성이 공격하기 시작했지만, 이 사범들은 평소 훈련한 기술을 활용해 그를 제압하고 붙잡을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보안관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신속한 조치에 나선 용인 태권도장에 감사한다"라고 전했다.
가해자인 로빈슨은 여성을 불법으로 감금하고 성폭행을 시도한 혐의와 그를 제압하려는 안씨 등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사건은 현지의 주요 일간지 등에도 대서특필됐다.
한주씨의 부인 안홍연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며 "그저 위험에 처한 여자애를 도와줬을 뿐이다.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홍연씨의 말에 따르면 사건 당일 안씨 가족은 오후 2시가 좀 넘어 도장에 나왔는데, 그때부터 홍연씨는 못 보던 남성이 옆 가게 안에 있는 것을 수상하게 여겼다. 가게 창을 통해 비친 모습이 아무래도 좋지 않아 남편이 아이들에게 한번 체크해보라고 했었는데, 갑자기 여자 비명이 들려서 곧바로 뛰어 들어갔고 이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 때 문제의 남성이 피해 여성을 창고 형태의 방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됐다.
태권도 관장이자 아버지인 한주씨가 순식간에 태권도 기술로 용의자를 먼저 제압했으며 이어 두 아들인 사이먼(형빈·20)과 크리스티안(성훈·18)씨가 도왔다. 특히 제압 과정에서 가해자가 한주씨의 팔을 물어 상처를 입기도 했다. 아버지와 아들들이 범인을 제압하는 동안 홍연씨와 딸 한나(현정·22)씨는 즉시 범인이 나오지 못하게 문을 잠그고, 피해자를 도장으로 데려와 보호했다.
안 관장은 용인대 태권도학과 출신으로 30여년간 태권도를 가르쳐왔지만, 실제 범죄 현장에서 이렇게 무술을 쓴 것은 처음이라고 홍연씨는 전했다.
당시 범인이 총기나 흉기를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홍연씨는 "사실 무모하긴 했다"며 "다만 남편이 워낙 태권도를 오래 했고, 그 가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다들 자식 같다는 마음에 그냥 다른 생각 없이 바로 뛰어간 것 같다"고 밝혔다.
한주씨는 태권도 8단에 합기도 6단이며 딸 한나씨와 두 아들 사이먼·크리스티안씨는 각각 태권도 5단, 홍연씨는 태권도 4단으로, 가족 모두 태권도 유단자다.
아들 사이먼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며 아버지가 용의자를 제압하는 것을 주도했다"며 "용의자는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하며 도망치려 했지만,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꼼짝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가족의 태권도 실력이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쁘다"라고 덧붙였다. 홍연씨는 "우리가 그리 큰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태권도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