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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이면 석유 공급 과잉으로 전 세계가 싼값에 석유를 쓸 수 있을 것이란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망이 나왔다. IEA는 꾸준히 이 같은 '석유 수요 피크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에선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고 일축하고 있다.
IEA 주장의 논거는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이 급증하는 가운데 태양광·풍력 발전과 전기차 확대 등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원전 르네상스' 역시 화석 연료 수요에 타격을 줄 전망이다. 그러나 OPEC은 석유 가격이 내려가면 그동안 석유가 비싸서 쓰지 못한 신흥국의 석유 수요가 늘어, 에너지 가격은 균형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한다.
과거 석유가 고갈될 것이란 '피크 오일' 주장이 득세했었다. 지금까진 예언이 완전히 빗나갔다. 이번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유가가 폭락할 것이란 IEA의 예상을 믿는 대신, 오히려 "환경론자들이 불안감을 조성해 화석연료를 줄이게 만드는 '자기실현적 예언'을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의혹을 제기한다.
WSJ "2030년, 전 세계가 남아도는 석유에서 수영한다"
IEA는 지난 12일 공개한 중기 보고서 '석유 2024'를 통해 글로벌 석유 수요는 2029년 하루 1억560만배럴로 정점을 찍고 2030년부터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3월 보고서에서 예상한 2030년보다 수요 정점 시점이 1년 앞당겨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보고서를 그대로 인용해 "2030년, 전 세계가 남아도는 석유에서 수영한다"란 제목으로 기사를 쓰기도 했다. 2030년 글로벌 석유 수요량은 지금보다 다소 늘어난 하루 1억54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의 경우 OPEC 국가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브라질 가이아나 등이 경쟁적으로 생산을 늘려 하루 약 1억1380만 배럴까지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하루 800만배럴가량의 공급 과잉이 발생한다는 계산이다. IEA는 "2020년 코로나19로 봉쇄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를 제외하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수준의 공급 과잉이 나타날 것"이라며 "OPEC+의 시장 관리 노력에도 유가가 하락하며 산유국에 어려운 과제를 안겨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IEA는 예전부터 석유 수요 정점이 가까워졌다고 경고하고 있다.
선진국의 석유 수요는 지난해 일일 4570만배럴에서 2030년 4270만배럴까지 감소할 것으로 IEA는 예상했다. 이는 1991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전기차 확산, 친환경 대체 에너지원 확대, 중국의 성장률 둔화 등이 이유로 꼽힌다. 글로벌 에너지 공급에서 화석 연료 비중 역시 수 십년간 80% 수준에 머물렀으나 2030년 73%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OPEC+의 시장관리 능력은 시험대에 서고, 석유업체들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면서 미국과 사우디 등을 걱정하며 "이제 석유 생산업체들이 변화에 맞춰 사업전략과 계획을 재고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OPEC "IEA의 주장은 비현실적"
OPEC은 IEA의 보고서 발표 다음 날 곧바로 반박했다. OPEC에 따르면 2045년까지 전 세계 석유 수요는 최소 일일 1억1600만 배럴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하이탐 알가이스 OPEC 사무총장(사진)은 에너지 리서치·컨설팅 에너지에스펙츠 기고문에서 EIA의 보고서를 "잠재적으로 전례 없는 규모의 유가 변동성만 초래할 수 있고, 소비자에게 위험한 논평"이라고 비판했다.그는 "OPEC에선 2024년과 2025년 2년간 석유 수요가 일일 400만배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다른 기관들도 300만배럴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본다"며 "IEA도 같은 기간 수요가 200만배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고, 2026년엔 80만 배럴 늘어날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IEA의 전망치는 그 후 2030년까지 4년 동안은 수요 증가량이 절벽으로 떨어지며 이는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알가이스 사무총장은 IEA가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두고 선진국에 자문을 제공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IEA는 휘발유 수요가 2019년에 정점을 찍었고, 석탄 수요는 2014년에 정점을 찍었다고 주장하는 등 번번이 틀린 주장을 했다"며 "(이번 보고서 역시)IEA의 반(反)석유 시나리오의 연장선에 불과하며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꼬집었다.
수 십년간 빗나간 석유 피크론
미국 에너지정보국(EIA), 컨설팅 기업 리스타드에너지 등 다른 기관들도 2030년대 전기차 보급으로 운송 휘발유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고 예상한다는 재반박도 나온다. 그러나 미국 EIA가 IEA와 같이 전기차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원유 수요가 위축할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는 않는다. 전기차로 인한 감소분은 중국, 인도, 아프리카의 경제 성장에 따른 에너지 수요 증가로 상쇄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인은 1인당 연간 약 22배럴의 석유를 소비하는 반면, 중국인은 1인당 3.7배럴, 인도인 한명은 연간 1.3배럴의 석유를 사용한다.
새로운 에너지 '블랙홀' 인공지능(AI) 붐에 따른 화석 에너지 수요 증가도 예상된다. 데이비드 메슬러 오일프라이스닷컴 칼럼니스트는 "대부분 전문가는 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가 AI 전력 수요를 충족시킬 것으로 예상하지만 간접적으로 석유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소형모듈형원자로(SMR) 등도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비용과 인허가 문제가 걸림돌이다.
석유 관련 예상은 과거에도 틀린 적이 많았다. 석유 고갈 이론이 대표적이다. 미국 지질학자 M.킹 허버트는 미국 석유 생산은 1970년대 정점을 찍고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예측은 틀렸고, 다른 과학자들은 2000년께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고 전망을 고쳤다. 예언은 또 빗나갔고 최근엔 2040년에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고 고쳐 주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석유 고갈론 역시 서방의 에너지 안보 관련 군사 행동 등을 정당화하는 도구였다는 음모론도 제기된다. 이번 IEA의 석유 수요 감소론은 환경론자의 의도적 전망치 왜곡이란 주장과 비슷한 흐름이다. 최종근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한국석유공사에 기고한 글에서 "석유나 가스 자원 고갈 예상 시점이 언제나 '40~50년 뒤'인 이유가 있다"며 "에너지 탐사·생산 기업들은 향후 40~50년 정도 생산할 분량의 자원을 미리 탐사해놓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