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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 주름살 펴는 K보톡스…균주 도용 두고 '7년째 내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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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젤은 불공정 행위를 하지 않았다.”

지난 2년간 이어진 메디톡스와 휴젤 간 ‘보툴리눔 톡신 균주 도용 소송’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결론이다. 보툴리눔 톡신 제품을 국내에 처음 팔기 시작한 메디톡스는 경쟁사인 휴젤이 자사의 균주를 몰래 가져다 썼다며 2022년 ITC에 제소했다. 휴젤은 사실무근이라며 소송을 이어왔고 지난 10일 예비판결에서 ITC가 휴젤 손을 들어주며 양사의 싸움이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두 회사 간 소송전이 여기에서 종결될지는 불확실하다. 게다가 국내 다른 경쟁 업체들과의 소송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메디톡스가 다른 경쟁사들이 자신의 균주를 도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어서다. 2017년부터 계속되는 ‘K보톡스’ 집안싸움의 이면에는 보툴리눔 톡신 균주 출처 논란, 정부의 독소관리 부실, 급성장하는 K뷰티 주도권 경쟁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메디톡스 vs 대웅·휴젤, 끝나지 않는 법정 다툼
소송의 직접적인 불씨는 ‘균주 도용’이다. 흔히 보톡스라고 불리는 보툴리눔 톡신은 보툴리눔 균에서 뽑아낸 톡신(독소)을 정제해 원액으로 쓰는 미용 치료제다. 정제 기술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기 때문에 시장 진입의 핵심은 균 확보 여부다.

2006년 최초의 국산 보툴리눔 톡신 제품을 내놓은 메디톡스의 균주는 양규환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연구하다 국내에 들여온 것이다. 이반 홀 박사가 1920년 세계 최초로 발견한 오리지널 균(홀A하이퍼)이다. 국내 보툴리눔 톡신 시장이 열리면서 메디톡스 매출은 2007년 51억원, 2008년 101억원으로 불어났다. 이후 휴젤(2009년), 대웅제약(2013년) 등이 뛰어들었다. 두 회사는 균주를 통조림과 경기 용인의 땅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메디톡스는 후발주자들이 원료(균)와 공정법을 도용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첫 소송 상대는 대웅제약이었다. 2017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영업비밀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2019년에는 ITC에도 소송을 냈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메디톡스의 ‘승’이다. 국내 재판부는 대웅제약의 균주가 메디톡스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결했다. 대웅제약은 즉시 항소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미국 ITC 소송에선 대웅제약의 미국 유통사와 메디톡스가 로열티를 내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대웅제약과의 1차전에서 승기를 잡은 메디톡스는 국내 1위 보톨리눔 톡신 업체인 휴젤을 ITC에 제소했다. 결과는 휴젤의 ‘승’이었다. 예비판결문에 구체적인 내용이 담기진 않았지만 양사의 균주 유전체가 다르고 공정법 역시 같지 않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커지는 뷰티시장에 날개 단 ‘K보톡스’
보툴리눔 톡신을 둘러싼 소송이 치열한 또 다른 배경은 수익성이 높은 산업 특성이다. 보툴리눔 톡신은 다른 의약품에 비해 제조원가가 낮은 편이다. 균주를 한번 확보하기만 하면 무한정 배양이 가능해 끝없이 원액을 뽑아낼 수 있다. 보툴리눔 톡신 사업을 ‘노다지 사업’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국내 보툴리눔 톡신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40%에 달한다. 휴젤은 2022년 2817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영업이익이 1014억원이었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3197억원과 1178억원이었다.

세계적으로 ‘K뷰티’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한국 보툴리눔 톡신 제품의 인기도 높아졌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연간 보툴리눔 톡신 수출액은 2022년 2억2320만달러에서 지난해 3억712만달러로 급증했다. 2019년 국내 보툴리눔 톡신 기업 중 가장 먼저 미국 시장에 진출한 대웅제약 관계자는 “현지 의료진으로부터 정확한 부위에 원하는 만큼 주름을 펴주는 효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환자 만족도도 높다”고 했다. 미국 보툴리눔 톡신 시장 규모는 6조원(2023년 기준)에 이른다.
韓에서만 제품 우후죽순…“이례적 현상”
보툴리눔 톡신을 개발·판매 중인 국내 기업은 20여 곳에 달한다. 한국을 제외하면 세계 통틀어 보툴리눔 톡신 제품 상업화에 성공한 업체는 5곳뿐이다. 한국에만 보툴리눔 톡신 기업이 많은 배경에 대해선 여러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각국 정부의 초기 균주 관리가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보툴리눔 톡신은 신경독소로 근육을 마비시켜 미간 주름 등을 일시적으로 펴주는 원리다. 이 독소는 1g만으로도 100만 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각국 정부가 엄격히 관리하는 이유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휴젤과 대웅제약이 2009~2010년 국내에서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발견했다는 신고를 받고도 역학조사를 하지 않았다. 질병청은 대웅제약과 메디톡스 간 소송이 벌어지고 난 뒤 부랴부랴 전면조사를 했다. 김지현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는 “보툴리눔 균은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자라는 혐기성균이기 때문에 통조림 등에서 발견될 수는 있다”면서도 “한국에서만 이렇게 많은 균이 발견됐다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소송 리스크 회피 위해 제품 개발 ‘활발’
7년째 이어지는 ‘K보톡스’ 소송에 대한 업계 반응은 다양하다. “글로벌 보툴리눔 톡신 시장은 계속해서 커지는데 돈 벌어다 로펌 배만 불리고 있다” “독자적인 제품 포트폴리오 강화로 소송전에서 탈피해야 한다” 등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소송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제품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국내 보툴리눔 톡신 기업들은 기존 상용화된 제품(A타입)보다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E타입’ 보툴리눔 톡신, 치료용 보툴리눔 톡신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원조는 1989년 美 엘러간 유일하게 '보톡스' 이름 사용 亞 최초 생산은 中 란저우

한국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보툴리눔 톡신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은 다섯 곳이다. 전통의 미국 엘러간부터 레반스 등 신흥주자까지 15조원 규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국내 보톡스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1973년부터 사시 치료용으로 사용되던 보툴리눔 독소는 1989년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으며 안면 반쪽 마비 등의 치료제로 쓰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처음 보툴리눔 톡신 제품을 내놓은 기업은 엘러간이다. 이 회사 제품명이 ‘보톡스’다. 미국 보툴리눔 톡신 시장의 80% 가까이를 점유하고 있다. 보툴리눔 톡신 시장을 개척한 지 30년 만인 2019년 엘러간은 글로벌 대형 제약사 애브비에 630억달러(당시 약 73조원)에 인수됐다. 애브비는 글로벌 매출 1위 의약품 ‘휴미라’를 개발한 기업이다.

엘러간 다음으로 보툴리눔 톡신 제품을 내놓은 곳은 프랑스 입센이다. 엘러간의 보톡스가 시판된 지 2년 만인 1991년 ‘디스포트’를 출시하며 현재까지 세계 시장 점유율 2위를 고수하고 있다. 입센은 디스포트 허가를 준비할 때부터 미용뿐 아니라 치료용 보툴리눔 톡신으로서의 차별점을 내세웠다. 주름뿐 아니라 성인의 근육 긴장 및 경부 통증 등이 치료 대상이었다. 1997년에는 아시아 최초의 보툴리눔 톡신 제품이 나왔다. 중국 란저우생물학연구소의 ‘BTX-A’다. 미국 다음으로 큰 시장으로 꼽히는 중국에서 정식 허가를 받은 기업은 ‘전통의 강호’인 엘러간(애브비)과 입센, 란저우, 그리고 한국 휴젤 등 네 곳뿐이다.

2005년 시장에 들어온 후발주자 독일 멀츠는 ‘순수 톡신’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신경독소 중에서도 순도가 높은 독소를 활용해 내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2022년 FDA 승인을 받은 미국 레반스의 ‘댁시파이’는 지속성을 무기로 삼아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보통 한 달가량 지속되는 기존 보툴리눔 톡신과 달리 댁시파이는 6개월까지 효능이 지속되는 세계 최초 장기지속형 신경조절제라는 점을 내세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QY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보툴리눔 톡신 시장 규모는 지난해 70억8400만달러에서 2028년 113억8300만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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