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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경영, 태도가 답이다 [한경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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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우 마이다스그룹 회장·마이다스아이티 최고인사책임자(CHO)

요즘 경영자들을 만나면 MZ세대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을 많이 듣는다. 업무 시간에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말을 걸기가 조심스럽고,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자고 하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고 한다. 사실 조직 내 세대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다만 불통 문제는 단순히 세대 갈등 차원에서만 접근할 일이 아니다. 불통의 주된 요인은 공감, 배려, 협력, 염치, 양심 등의 사회적 능력 부족이다. 자기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하는 기성세대의 소통 방식도 결국 사회적 능력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는 집단 시너지 때문이다. 집단의 힘은 개체들의 상호작용에서 나온다. 긍정적 상호작용은 구성원들을 하나로 결속시켜 조직력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 반면에 부정적 상호작용은 구성원들을 모래알처럼 흩어지게 하고 결속력을 약화한다. 긍정적 상호작용의 기반이 되는 것은 ‘친사회성(prosociality)’이다. 조직에서 구성원들의 친사회성 부족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친사회성 부족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그러면 사회적 상호작용이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는 ‘좋은 성적=좋은 대학=좋은 직장=좋은 인생’이라는 왜곡된 성공방정식이 있다. 이러한 맹목적 신념 때문에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간 순간부터 대학입시를 향해 달리는 경주마가 된다. 학교와 학원을 바삐 오가느라 정작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다. 입시 위주 교육이 우리 사회에 드리운 가장 큰 그늘이 바로 ‘사회적 상호작용’의 단절이다.

사회적 상호작용이 단절된 환경에서 아이들은 친구 대신 공부를, 질문 대신 정답을, 자기 생각 대신 부모 생각을 따르도록 강요받는다. 스스로 답을 찾고 만들며 자기 삶을 살아내는 능동적 주체가 아니라 ‘정답 맞히기’ 기계처럼 길러지는 것이다. 그러니 남을 이기는 기술은 배워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가치적 시너지를 내는 법은 익히지 못한다.

교육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 듣는 시간을 자주 가진다. 그때마다 기업 경영자가 교육에 관심을 갖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한다. 경영이든 교육이든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기업은 사람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고, 교육은 사람의 성장을 돕는다. 둘 다 ‘사람’이 목적이고, 사람의 ‘성장과 행복’이 지향인 것이다.

사람을 키우겠다고 ‘벼의 뿌리를 잡아당겨 인위적으로 키를 늘려주는’ 조장(助長)을 해서는 안 된다. 성적으로 줄 세우며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빠른 학습 속도와 높은 성적만을 추구하는 선행학습 역시 조장이나 다를 바 없다. 벼는 스스로 튼튼한 뿌리를 내릴 때 비로소 단단하게 여문 알곡을 내놓는다. 생명을 지닌 모든 것은 저마다의 결대로 자라날 때 가장 아름답다. 사람도 그렇다. 사람의 결을 이해하고 그것을 꽃피우는 일, 그것이 경영과 교육이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경영의 답도, 교육의 답도 결국은 사람의 결에 있다.
사람은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다
세상의 모든 현상은 ‘관계와 상호작용’으로 창발된 질서다. 사람도 관계와 상호작용에 따른 생화학적·생물학적 질서를 바탕으로 태어나고, 신경과학적 · 인지심리학적 질서를 축적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사람은 유전적으로 태어나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사람=유전자X환경). ‘본성인가, 양육인가’라는 해묵은 논쟁은 이미 무용하다.

자연은 우리에게 환경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도록 진화의 길을 열어주었다. 꽃이 향기를 갖고 열매를 품게 된 것이나 기린의 목이 길어진 이유는 그것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진화한 이유도 집단을 이루어 협력하며 사는 것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타인과 사회의 이익을 지향하는 ‘친사회성’은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적응적 특성이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고립된 주인공 척 놀랜드가 한 소포에 그려진 배구공 윌슨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울고 웃는 장면은 우리에게 친사회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인간은 사람(人) 사이(間)에 관계로 존재한다. 우리는 관계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을 교과서에 박제된 철학적 수사 정도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사람에게 친사회성은 유전자 깊이 새겨진 본능이자 존재의 이유이고 지향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 태어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성장하며 사회적 존재로 살아간다. 사회의 본질은 ‘유전자풀’이다. 모든 인간 개체는 유전자풀인 사회의 안위와 번영에 기여할 때 더 나은 삶과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인간은 사회의 일부분이면서 동시에 전체와 연결된 존재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로서 서로 소통하고 협력함으로써 지구촌이라는 거대한 공동체를 건설하고 인류 문명을 창조할 수 있었다.

집단 시너지를 위한 사회적 관계는 다양한 변수들의 역동적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다. 이러한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매개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 ‘사회적 뇌’다. 상대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인 ‘눈치’,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하는 능력인 ‘재치’,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능력인 ‘염치’와 같은 사회적 인지능력은 모두 사회적 뇌가 담당하고 있다.

뇌는 나와 세상을 비추는 신경적 거울이다. 나와 세상은 서로를 비추고 서로를 담는다. 그렇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우리가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필수적이다. 뇌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해 진화했지 ‘정답 맞히기’ 식의 지식 학습을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다.

사회적 동물로 태어나 친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 우리의 본질은 ‘상호작용’이다. 우리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생존 역량을 강화하고 행복 기술을 함양한다. 하지만 오늘날 교육은 아이들을 지식 공부만을 위한 독방에 가둔 채 붕어빵 찍어내듯 지식 기계를 양산하고 있다. 오히려 사회적 상호작용을 차단하면서 아이들의 미래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역리(逆理)이고, 역설(逆說)이 아닐 수 없다.
성장의 본질은 친사회성이다
교육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 사람은 교육을 통해 성장할 수 있고, 사회는 교육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교육은 사람의 성장을 도움으로써 사회의 미래를 도모한다.

성장은 ‘현재보다 더 나아짐’을 의미한다. ‘더 나음’의 추구는 이기적, 사회적, 정신적 욕망으로 발현되고, 이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생물, 동물, 인간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성장 욕망은 사람의 본능이자 본성이다. 우리가 성과를 원하고 성공을 추구하는 이유도 성장 본능 때문이다. 사람도 조직도 사회도 성장을 추구한다.

성장의 본질은 무엇일까?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 성장이란 결국 친사회성이 증대되는 것이다. 친사회성의 증대는 친사회적 욕망이 커지는 것이며, 동시에 사회와의 동일시 범위가 확장되는 것이다. 동일시 범위가 확장될수록 우리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기적’ 존재에서 타인과 가치를 거래하고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호혜적’ 존재로, 그리고 집단 전체의 성공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이타적’ 존재로 성장한다. 사람은 이러한 욕망의 성장을 통해 세상을 위한 가치를 더 많이 만들며 사회적 성장을 하게 된다.

조직에서도 사람은 친사회적 욕망이 커질수록 더 많은 성과를 만들게 된다. 구성원들의 친사회적 욕망이 커질 때, 즉 협력과 시너지를 통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욕망이 커질 때 조직의 성과도 커진다. 구성원의 사회적 성장을 돕는 것은 곧 조직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조직에서의 육성은 친사회성의 증대를 통한 사회적 성장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중요하다.

친사회성의 강화는 사회와의 긍정적 상호작용을 통한 성과와 성공경험의 축적으로 이뤄진다. 인간은 성공경험으로 성장하고 실패경험으로 퇴행한다. 성공경험이 축적되면 자신감, 존재감, 자존감과 같은 자기효능감과 더불어 친사회성이 강화되고, 실패경험이 축적되면 자기중심적 성향이 심화되면서 사회적 고립이 깊어진다.

실패경험은 실패를 피하는 요령을 알려줄 뿐 성공하는 법을 알려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성공경험을 통해서만 성공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성공경험은 성장의 선순환을 만드는 핵심 요소다.
역량은 사회적 기초체력이다
우리는 어떻게 성장할까?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한다.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주체는 뇌다. 환경과의 상호작용 경험은 뇌를 통해 내면화되어 역량으로 형성된다(역량=뇌X환경). 우리는 다시 이 역량을 통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사람=역량X환경).

우리는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자극을 접하며 다양한 경험과 학습을 한다. 그때마다 뇌는 신경적 반응을 통해 신경흔적의 형태로 기억을 형성한다. 기억은 무수한 판단과 선택을 재료로 가치중심의 신경맥락적 반응 패턴을 축적한다. 이 신경맥락적 반응 패턴이 반복되어 신경경향성으로 강화된 것이 바로 ‘역량’이다. 요약하면, 환경이 주는 자극에 대한 뇌의 가치중심적 반응이 맥락적으로 쌓여 역량이 되는 것이다. 신경과학이 말하는 역량의 본질은 ‘성장 과정에서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고 축적된 신경맥락적 반응성’이다.

역량은 뇌의 발달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성장기에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 즉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경험을 하며 자라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역량을 갖게 된다. 가령 영유아 시절 초기 양육자와 긍정적 상호작용을 풍성하게 한 사람은 긍정성이 잘 개발되어 어려운 상황도 기회로 받아들이며 능동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간다. 그렇지 못한 경우 부정적인 성향을 갖게 되어 작은 역경에도 쉽게 좌절하고 도전을 두려워하게 된다. 타인과 세상을 불신하는 심리적 태도로 인해 대인관계와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무엇을 경험했는가가 바로 그 사람이 되고 역량이 된다. 우리는 역량으로 세상을 만나고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인생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역량은 삶의 동력이고 성능이다. 우리는 역량으로 성과를 만들어 타인을 비롯한 사회와 가치거래를 한다. 성과란 비단 기업 조직에서 만들어내는 가치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다. 우리가 가족, 연인, 친구, 동료, 고객 등 모든 관계에서 주고받는 다양한 가치들이 모두 성과다.

성과는 지식이나 기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성과 능력은 역량을 기반으로 지식과 기술이 더해져 작동한다(능력=지식X기술X역량). 지식은 능력의 도구이고, 기술은 능력의 재료이다. 역량은 능력의 성능에 해당한다. 화려한 디자인에 온갖 옵션을 장착한 자동차라 할지라도 엔진 성능이 낮거나 부족하면 제대로 달릴 수 없듯이,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나 지식도 성과라는 가치로 전환되기 어렵다.

역량은 상호작용을 통해 성과를 만드는 데 있어 ‘사회적 기초체력’의 역할을 한다. 김연아나 손흥민과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들에게 기초체력이 부족했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기술과 기량이 뛰어나다 해도 기초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다른 쟁쟁한 선수들을 앞지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초체력은 신체적 강인함만 일컫는 것은 아니다. 두 선수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바탕은 목표에 대한 집중력, 주어진 상황에서 최적의 판단을 하는 전략적 능력, 힘든 훈련을 이겨내는 끈기와 인내, 실패와 역경을 극복하는 회복탄력성 등과 같은 사회적 기초체력인 역량이다.
왜 역량 기반 육성인가?
뇌에서 만들어지는 ‘인지 체력’이기도 한 역량의 개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영유아기다. 뇌는 본질적으로 유전자와 태내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여, 생리화학적으로 신경세포와 신경망을 형성하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뇌의 발달은 자연선택의 결과로 탄생한 진화 메커니즘에 따라서 ‘축조적’으로 이뤄진다. ‘축조’는 아래층을 기반으로 위층을 쌓아 올리는 방식을 말한다. 건물을 세울 때 1층을 먼저 만들고 그 구조를 바탕으로 2층과 3층을 차례로 쌓아 올리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뇌 발달에 있어서도 하위 구조의 형성이 상위 구조의 발달에 중요한 기반이 된다. 뇌 발달과 역량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영유아기다. 이 시기의 풍부한 경험은 이후 상위 인지기능과 역량 발달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발달심리학에서는 가지치기와 수초화를 통해서 뇌의 질적 수준이 대부분 결정되는 영유아기부터 사춘기까지를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 혹은 민감한 시기(sensitive period)라고 말한다. 역량 역시 출생 이후 ‘결정적 민감기’를 지나 20세 전후가 되면 대부분 완성되어 더 이상 개발이 어렵다. 따라서 성년기 이후에는 역량을 개발하는 것보다 이미 보유하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 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역량은 역량을 바탕으로 환경과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발현된다(발현역량=보유역량X환경). 조직에서의 육성은 풍성한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역량 발현의 최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든 사람을 김연아나 손흥민 선수처럼 키울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역량 기반 육성에서 중요한 것은 5의 역량을 가진 사람은 5의 역량 모두를, 그리고 10의 역량을 가진 사람은 10의 역량 모두를 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역량을 십분 발현하기 위해서는 환경과 더불어 앞서 말한 공감, 배려, 협력, 염치, 양심 등의 사회적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무리 탁월한 코딩 실력을 지닌 개발자라 할지라도 공감 능력이 부족해 팀원들과 긍정적 소통이나 협력을 잘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조직에는 뛰어난 역량을 지녔음에도 사회적 능력 부족으로 인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역량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요즘은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 주변 사람도 신경 쓰지 않으며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태도를 ‘쿨함’이라고 표현한다. 가끔은 사회적 능력의 부족을 ‘쿨함’으로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은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사회적 관계의 본질은 가치중심적 ‘얽힘’이다. 그 씨줄과 날줄의 ‘얽힘’으로 우리는 인간을 넘어 인류가 될 수 있었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려면 좀 끈적거린다 싶어도 서로를 돕고 살펴주는 다정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태도가 답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관계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며 존재한다. 우리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인생은 자신과 세상의 상호작용이다(인생=자신X세상). 우리의 몸과 마음, 행복과 성공 등 인생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세상과 상호작용한 결과로 만들어진다. 인생방정식 ‘인생=자신X세상’에서 자신은 과거의 누적 결과로 현재 존재하는 과거 변수다. 세상 역시 이미 결정되어 만들어진 과거 변수다. 자신도 세상도 모두 과거 완료형이다. 과거는 비가역적이다. 과거에 의해 이미 결정된 변수를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살 수 없을뿐더러 미래를 앞당겨 사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현재만 살 수 있다. 오직 현재만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지는 매 순간 어떤 태도로 상호작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자신과 세상은 과거에 종속되어 닫혀 있지만, 인생의 미래는 현재 나의 태도에 의해 열려 있다. 우리는 메타인지를 통해 현재 시점에 일어나는 태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하고 전환함으로써 더 나은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다.

불교에서는 우주의 모든 존재와 현상이 인연과(因緣果)의 법칙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진다고 설명한다. 인연과는 ‘인(因)이라는 원인이 연(緣)이라는 조건을 만나 과(果)라는 결과로 일어난다’는 의미다. 이를 우리 인생에 비추어보면, 인생이라는 결과는 ‘자신’과 ‘세상’이라는 두 가지 원인이 ‘태도’라는 조건을 매개로 상호작용함으로써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교통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은 스물한 살의 여대생은 마흔 번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다. 안면장애와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이 되었다.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의 극심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사고 후 23년 만인 작년에 모교에 교수로 임용되며 새 출발을 알린 이지선 씨의 이야기다. 한 인터뷰에서 이 교수는 “나는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사고를 만났다. 그리고 사고와 아름답게 잘 헤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생은 깜깜한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고, 터널 끝에 기다리고 있는 빛을 만나기 위해선 계속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지선 교수의 이야기에는 ‘인연과’가 우리 인생에 전하는 중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비록 우리 앞에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선택할 수 없지만, 그것이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날지 선택할 수 없지만, 지금 마주한 세상을 어떤 태도로 대할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인생의 결과는 그러한 우리의 태도에 따라서 달라진다. 좋은 태도가 좋은 인생을 만든다. 인생의 답은 태도에 있다.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죽는다. 사람을 태어나게 하고 살게 하는 것은 세상의 바탕이 되는 원리인 관계와 상호작용이다. 사람은 상호작용을 통해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 관계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태도다. 20년 넘게 세상과 사람의 본질을 탐구해온 끝에 찾아낸 인생의 열쇠가 바로 ‘태도’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 세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간이 태도를 바꿈으로써 자기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라고 갈파했다. 태도가 ‘E=mc2’보다 위대한 발견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기 때문이다. 인류의 위대한 발명으로 일컬어지는 자본주의나 스마트폰보다 ‘태도’가 더 중요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더 잘 성장하고 싶다면, 더 좋은 인생을 살고 싶다면 결국 태도를 바꿔야 한다. 사람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태도를 통해 바람직한 변화를 유도할 수는 있다. 태도가 사람을 키우고 풍성한 인생을 살도록 도울 유일한 열쇠다. 태도가 답인 것이다.

기업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KSA(Knowledge, Skill, Attitude) 교육으로는 사람을 키울 수 없고 더 좋게 바꾸기도 어렵다. 그래서 마이다스에는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 과정이 없다. 직무 관련 교육은 현업 부서에 일임한다. 대신 CSR(태도기술)을 통해 ‘바람직한 태도의 함양과 습관화’를 유도하는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KSA에서 말하는 태도(Attitude)는 주로 사회생활 예절과 매너를 가리키는데, CSR에서 말하는 태도는 본질적으로 ‘바람직한 상호작용을 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CSR은 소통(Communication), 전략(Strategy), 성찰(Reflection)의 영어 머리글자를 합친 단어다. 상대중심 소통, 성과중심 전략, 합리중심 성찰의 태도로 타인(세상), 일(성과), 자신(자아)과 풍성한 상호작용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CSR의 핵심이다.

CSR 기반 육성 프로그램은 ‘사관학교(四觀學校)’라는 이름으로 운영된다. 사관은 나, 세상, 삶, 일에 대한 네 가지 관점을 가리킨다. 나는 인생의 주체이고, 세상은 상호작용의 객체이다. 나는 세상과의 상호작용으로 삶을 살아가고, 일을 통해서 세상과 가치를 교환한다. 사관학교의 목적은 네 가지에 대한 합리적 관점을 통해 인식의 관성과 감정의 장벽에서 벗어나 객관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객관의 힘은 메타인지에서 나온다. 메타인지는 CSR을 통해 바람직한 상호작용을 매개함으로써 좋은 인생을 위한 사회적 기초체력을 길러준다.

취업을 위해 스펙 경쟁에 함몰되었던 젊은 세대는 막상 사회에 나와 적응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성찰해본 적이 없고, 세상은 경쟁과 불신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취업을 위해 젊음을 희생했다 여기고, 이런 마음가짐은 일은 안 할수록 삶은 편할수록 좋다는 태도로 이어진다. 이러한 태도는 풍성한 상호작용을 방해하고 집단 시너지를 저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사관학교에서는 합리를 기반으로 하는 객관적 관점을 통해 자신의 태도를 스스로 개선하고 전환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마이다스에서 작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일잘마 프로젝트’의 핵심도 CSR을 기반으로 일 잘하는 습관을 실천함으로써 프로 일잘러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일잘마’는 ‘일 잘하는 마이다시안’의 줄임말이다. 2023년 시즌 1에서는 면접과 심사과정을 거쳐 선발된 52명이 참가해 최종적으로 29명이 일잘마로 인증을 받았다. 2024년 시즌 2도 새롭게 혁신하여 진행 중이다. 마이다스의 태도 혁명은 현재진행형이다.
결대로 길을 가다
경영자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 일이 있다. 하나는 구성원들이 더 좋은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키워서 사회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경영의 본질적 가치는 사람을 키우는 일, 육성에서 나온다. 육성의 핵심은 사람의 본질적 속성 그대로 상호작용을 잘하도록 돕는 것이다.

“하늘이 내린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도를 익히도록 돕는 것을 교(敎)라 한다.” ‘중용’ 제1장에 나오는 문구다. 풀어보면, 진정한 육성이란 ‘자연이 만든 사람의 결대로 사람의 길을 가도록 돕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은 애써 꽃을 키우려고 하지 않는다. 꽃은 자연의 재촉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에 따라 자라난다. 자연 속에서 개나리는 개나리대로 가장 예쁘게,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다. 사람의 성장도 그러해야 한다. 결은 이미 우리 내면에 깃들어 있다.

경영은 사람을 사랑하는 실제적 행위다. 사랑은 한 사람의 내면에 가능태로 머물고 있는 존재를 발견하는 일이다.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은 구성원들이 각자의 결대로 가장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인재가 부실한 토양을 만나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기업과 구성원들 모두에게 너무나 큰 손실이고 불행이다.

사람도 기업도 종국에는 죽음과 소멸을 맞이한다. 사람에게 잘 죽는 것이 삶의 완성인 것처럼 기업의 궁극적 성공 또한 잘 소멸하는 것이다. 잘 죽는다는 것, 잘 소멸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죽음과 소멸을 넘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무한한 정신적 가치를 남기는 것이다. 경영의 가장 큰 가치는 사람을 키우고 정신을 남기는 것이다.

경영자는 사람의 결에서 경영의 길을 찾는 사람이다. 결을 따라서 길을 찾고 그 길을 가는 것, 그래서 그대로 길이 되는 것이 경영자가 꿈꿀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성장이고 완성이다.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 6월 14일자에 게재된 한경에세이 ‘육성이 경영이다’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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