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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볼모로…국내 1위 서울대병원, 퇴로 열어준 정부와 전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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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오는 17일 강도 높은 집단행동을 예고하면서 배수진을 친 것은 4개월 가까이 이어진 전공의 공백 사태가 이대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교수들이 내건 요구사항은 크게 두 가지다. 전공의 행정처분을 무조건 면제하고 의대 증원 규모를 재검토해달라는 것이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이런 요구가 관철되면 집단행동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혀 사태 해결의 공을 사실상 정부에 넘겼다.
○서울대 의대, 타임라인 ‘열흘’ 제시
서울대병원과 서울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서울시보라매병원,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등 네 개 병원 교수 14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에 참여한 교수 939명 중 63.4%가 휴진 등 강경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답했다.

‘휴진 방식’을 묻는 추가 설문조사에선 응답자 750명의 68.4%가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 필수 부서를 제외한 전체 휴진’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오승원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교수는 “필수 부서를 제외하고 휴진에 들어갈 것”이라며 “입원 환자는 휴진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계속 치료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지난 4일 전공의와 소속 수련병원에 내린 진료유지 명령과 업무개시 명령, 사직서수리금지 명령 등을 철회했다. 면허정지 행정처분 절차도 중단하기로 하면서 각 병원에 전공의 복귀를 설득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정부 방침만으론 전공의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게 교수들의 판단이다.

오 교수는 “정부가 복귀한 전공의에 한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지만 복귀 안 한 전공의는 여전히 직업 선택 자유 등이 침해되고 있다”며 “증원 재검토는 증원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규모를 다시 논의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병원으로 확산되나’ 촉각
서울대 의대에서 시작한 ‘집단 휴진’ 선언이 의료계 전체로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대한의사협회는 ‘6월 큰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에 맞춰 의사협회는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총파업 찬반을 묻는 투표를 하고 있다. 8일까지 진행되는 투표에 40% 넘는 회원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휴진에 반대한다는 표현을 하기 위해 일부러 투표에 참여한 의사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집단행동에 대한 의사 사회 여론이 그만큼 강경하다는 의미다. 다른 대학병원 교수들도 차례로 내부 의견 수렴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에선 생명을 살리는 필수과(바이탈과)는 물론 전공의들이 몰리던 인기과조차 당분간 복귀가 요원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피부과 의사 A씨는 “최근 전공의들과 개인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인기과인 피부과조차 수련을 포기하겠다고 한다”며 “일부는 아예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의사 시험을 준비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의사 집단이기주의 비판 거세져
일각에선 전공의 복귀를 설득해야 할 교수들이 ‘제자 지키기’란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돼 또다시 ‘환자 목숨’을 볼모로 한 싸움에 나서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2025학년도 정원은 이미 확정된 데다 국민 다수가 찬성하는 의대 증원 문제를 두고 의사들이 ‘명분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대 교수들은 집단행동을 통해 2026학년도 정원부터라도 재검토하도록 정부를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적정한 의사 인력 추계 조사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교수 사회가 이처럼 강도 높게 행동하는 것은 그동안 선배 의사들이 해결하지 못한 짐을 후배 의사들이 떠안았다는 부채의식이 깔렸다는 평가다. 현재 대학병원 교수들은 과거 주 120시간 넘는 고강도 전공의 생활을 묵묵히 버티며 의료 시스템을 지탱해왔다.

이전 세대 의사들은 이런 불합리한 노동·근로 조건, 필수 진료 분야의 고질적인 저수가 문제 등을 방관했다는 일종의 죄책감을 안고 있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이런 ‘마음의 짐’을 자극하는 불씨가 됐다는 것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2000년 의약분업 등을 겪으면서 불합리한 제도를 바꾸지 못했다는 일종의 패배의식이 자리잡고 있다”며 “이번에도 바꾸지 못한다면 영영 할 수 없을 것이란 인식이 강하다”고 했다.

이지현/이우상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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