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프랜차이즈 BBQ를 운영하는 제너시스BBQ그룹이 제품 가격 인상을 또다시 미뤘다. ‘물가 안정을 위해 인상을 늦춰줬으면 좋겠다’는 정부 요청에 가격 조정 시점을 보름 새 두 차례나 연기한 것이다. 식품·외식업계에서는 민간기업의 제품 가격 결정에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BBQ는 31일 이날로 예정됐던 제품 가격 인상을 6월 4일로 유예한다고 밝혔다. 애초 인상 시점을 지난 24일로 잡았다가 정부 요구로 8일 늦췄는데 이번에 또다시 나흘 연기했다. 외식업체가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가 시기를 두 차례 연기한 것은 이례적이다.
BBQ는 가격 인상 시점을 다시 늦춘 이유에 대해 “인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물가를 잡겠다’는 정부 입김과 소비자단체 반발이 작용한 결과라는 관측이 나왔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이날 “소비자 입장을 생각해 가격 인상을 늦춰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전날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주재료인 닭고기(육계) 시세가 하락하고 있는데 다른 원·부재료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는 것은 업체의 이익만 극대화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BBQ는 22일 110개 전체 제품 중 23개의 소비자권장가격을 평균 6.3% 인상한다고 밝혔다. 대표 제품인 ‘황금올리브치킨’은 종전 2만원에서 2만3000원으로 15% 오르고 ‘자메이카 통다리구이’는 2만1500원에서 2만4000원으로 11.6% 인상된다. BBQ의 가격 인상은 2022년 5월 이후 2년 만이다.
BBQ는 인상안을 발표하며 “원·부재료 가격과 최저임금, 임차료, 가스비 등 유틸리티 비용 상승으로 가맹점들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수익성이 악화했다”고 밝혔다. BBQ 자체 조사 결과 가맹점(매출 상위 40% 점포 기준)의 올해 4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가량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1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BBQ 가맹점주들은 가격 조정 시점이 계속 바뀌자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한 가맹점주는 “10년 넘게 점포를 운영하면서 프랜차이즈 업체가 가격 인상을 두 번이나 연기하는 것은 처음 봤다”며 “가격을 놓고 오락가락하다 보니 인상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을 표시하는 소비자가 많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가격 인상을 나흘 더 늦춘다고 물가 안정에 보탬이 되겠느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롯데웰푸드도 초콜릿 주원료인 코코아 가격이 급등하자 ‘빼빼로’ ‘가나 초콜릿’ 등 초콜릿 제품 17종 가격을 5월 1일부터 평균 12% 올리기로 했다가 정부 요청에 인상 시기를 6월 1일로 한 달 늦췄다. 어윤종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격 담합 같은 시장 교란 행위가 벌어지는 것도 아닌데 정부가 이런 식으로 개입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난다”며 “제때 가격을 못 올리면 나중에 한꺼번에 인상하게 돼 소비자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헌형/라현진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