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일까 허구일까 또는 그 둘 다일까.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알렉스 프레거(45)의 사진은 그 모호한 경계를 파고든다. 주변에서 본 듯 익숙하면서도 낯설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어딘가 꺼림칙한 그의 작품엔 늘 ‘언캐니(uncanny·이상하고 묘하다)’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미스터리 영화의 한 장면을 옮겨 놓은 듯한 프레거의 신작 사진 9점이 서울 한남동 리만머핀에 걸렸다. 화려한 인물 분장에서는 신디 셔먼, 성조기와 카우보이모자 등 미국적인 요소에선 윌리엄 이글스턴의 사진을 떠올릴 만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을 간직했다는 점은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와도 닮았다.
프레거는 예술성과 대중성 양면에서 정평 난 작가이자 영화감독이다.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그의 단편영화 ‘절망(Despair)’이 소개되며 이름을 알렸다. 또 다른 단편 ‘터치 오브 이블(Touch of Evil)’로 2012년 에미상을 거머쥐었다. 에르메스, 디올, 보테가베네타를 비롯한 명품 화보를 촬영하는 등 상업사진에서도 섭외 1순위로 꼽힌다.
그의 사진은 현실과 조작 사이를 줄타기하는 독창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정규 예술교육을 받은 적 없는 이력이 한몫했다. 13세에 학교를 중퇴한 작가는 유럽을 유랑하며 여러 일을 전전했다. 20대 초반에 윌리엄 이글스턴의 사진전을 보고 난 뒤 홀린 듯 니콘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이후 LA 코리아타운에 있는 암실에서 사진 기술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첫 장편영화 ‘드림퀼(DreamQuil)’ 제작과 동시에 영화 세트장에서 촬영한 이번 신작들은 작가의 20년 내공을 집대성했다. 팬데믹 이후 삭막해진 사회에 안타까움을 느낀 작가가 낭만이 넘실대던 과거 미국 서부를 재연한 작품들이다. 태평양 연안 모래사장 풍경을 담은 ‘캘리포니아’(2024), 라스베이거스 골목을 촬영한 ‘페이퍼 스트리트’(2023) 등 20세기 미국 서부극에 등장한 모습 그대로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웨스턴 메카닉스’(2024)가 백미다. 산과 들판을 배경으로 여러 인물이 뒤엉켜 있다. 키스하고 고함을 지르거나 기절하는 등 무질서 속에 각자의 감정에 충실한 모양새다. 인물들은 마치 잘 짜인 연극 무대처럼 배치됐는데, 외젠 들라크루아 등 낭만주의 화가들의 구도가 비쳐 보인다.
현실에 있을 법한 장면을 재연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웨스턴 메카닉스’ 가운데 인물이 탄 말은 살아있는 동물이 아니라 봉제 인형이다. 우측 하단은 사진의 배경이 실은 연극에 사용된 커튼이란 힌트를 준다.
프레거는 작업 중심에 언제나 인간의 감정을 배치한다. 조작과 진실을 오가는 그의 촬영기법은 이성과 질서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인물을 중심으로 감상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전시작 수가 적은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완성도는 뒤처지지 않는다. 사진에 숨어있는 ‘언캐니’한 요소들을 톺아보기 적당한 규모일지도. 전시는 6월 22일까지.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