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우리 회사와 좀 안 맞는 것 같아. 사표 쓰고 다른 회사 찾아봐.” 근로자가 대표의 이런 말을 듣고 퇴사했다면, 이는 권고사직일까, 해고일까? 근로관계의 종료 원인이 근로자의 사직인지, 사용자의 해고인지, 아니면 권고사직과 같은 근로계약 합의해지인지 확정하는 것은 부당해고 관련 분쟁에서 쉽지 않은 문제다.
‘사직’이란 근로자가 일방적 의사표시로 근로계약을 종료시키는 것이고, ‘근로계약 합의해지’란 사용자와 근로자가 합의로 근로계약을 종료시키는 것을 말한다. 권고사직도 합의해지의 일종으로, 일반적으로 사용자가 사직을 권유하고(합의해지의 청약), 이에 대해 근로자가 사직 의사표시(승낙)를 함으로써 합의해지가 된다. 때로는 “사표 써” 또는 “사직서 제출해라” 등과 같은 사용자의 표현이 합의해지에 관한 청약의 유인이고, 이에 대한 근로자의 사직 의사표시가 합의해지의 청약이며, 이를 사용자가 승낙하는 구조로 해석되기도 한다. 반면 해고란 근로자의 의사에 반해 사용자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든 근로관계의 종료를 의미한다.
그런데 개념상으론 명확히 구별되지만, 현실에서는 그 구별이 쉽지 않다. 사용자가 엄격한 해고 규제를 회피하려는 꼼수로 해고를 권고사직인 것처럼 악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용자가 근로자를 질책하다가 화가 나서 “이럴 거면 다른 곳 알아봐”라며 사직을 제안했을 뿐인데, 근로자가 ‘해고 당했다’고 주장하며 다투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처럼 권고사직과 해고의 의사표시 해석이 문제되는데, 이와 관련해 최근 대법원은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해고’를 인정한 바 있다(대법원 2023. 2. 2. 선고 2022두57695 판결). 다만 이 판례가 현실에서 악용될 가능성이 있어 조금 비판적 견지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해당 대법원 판결 사안은 이렇다. 근로자(원고)가 2020년 1월 작은 전세버스 회사(피고보조참가인)에 입사해 타 회사의 통근버스 운행을 담당했는데, 2차례 통근버스를 무단 결행했다. 이에 회사 관리팀장이 2번째 결행일에 근로자에게 버스 키를 반납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같은 날 17시경 관리상무와 함께 근로자를 찾아가 버스 키를 반납받으면서 “저기 가. 사표 쓰고.”라는 말을 몇 차례 했다. 서로 말다툼을 하던 중 관리팀장이 “어디 욕을, 차에서 내려오라니까”라고 하자 근로자는 “뭐요, 해고시키는 거요, 지금”이라고 했고, 관리팀장은 “그만두라니까. 사표 쓰고 가라니까”라고 했다. 이에 근로자는 “노동부에서 봅시다”라고 한 뒤 그 다음 날부터 약 2개월 반 동안 출근하지 않았고, 5월 1일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이후 회사는 5월 18일 ‘해고한 사실이 없으니 복귀하여 근무하고자 한다면 즉시 근무할 수 있다’는 내용의 ‘무단결근에 따른 정상근무 독촉통보’ 공문을 보냈다. 이에 대해 근로자는 5월 28일 회사에 ‘부당해고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부당해고기간 동안의 임금을 지급하면 복직하겠다’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보냈다. 회사는 6월 1일 ‘해고한 적이 없으니 원하면 언제든지 출근하여 근무할 수 있으므로 속히 출근하여 근무하기 바란다’고 통지했다.
지방노동위원회는 ‘해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근로자의 구제신청을 기각했고, 중앙노동위원회 역시 “회사의 일방적 의사로 당사자 사이의 근로계약 관계가 종료되었다고 보기 어려워 해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재심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근로자가 법원에 재심판정 취소소송을 제기했는데, 제1심과 제2심 모두 해고 사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해고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해고가 있는지 여부는 사용자의 노무 수령 거부 경위와 방법, 노무 수령 거부에 대하여 근로자가 보인 태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용자가 근로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할 확정적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면서,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해고를 인정했다.
해고의 의사표시 존재 여부와 관련하여, 제1·2심은 △관리팀장이 근로자의 무단 결행 후 무례한 언행에 화를 내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사표를 쓰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 △‘사표를 쓰라’는 표현 자체도 사직서 제출을 종용하는 것일 뿐 사용자의 의사표시로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겠다는 것이 아닌 점, △근로자가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따로 분명한 사직의 의사표시를 한 적도 없는 점, △회사가 해고 사실을 부인하고 근로자에게 복직을 촉구한 점 등에 비추어, 관리팀장이 일방적인 해고의 의사표시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관리팀장이 관리상무를 대동한 상태에서 ‘사표 쓰라’고 하기 전에 근로자에게 버스 키를 반납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실제로 버스 키를 회수한 것은 노무수령을 거부하는 의미로 평가할 수 있는 점, △사표를 쓰고 나가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한 것은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고자 하는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서 단순히 우발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볼 것은 아닌 점, △근로자는 해고를 당한 것으로 생각하였기에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채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므로, ‘사표를 쓰라’는 표현이 사직서 제출을 종요한 것에 불과할 뿐 해고의 의미가 아니라거나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으므로 근로관계가 존속한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점, △회사가 근로자의 결근에 대해 별달리 문제삼지 않다가 부당해고구제신청이 제기된 후 출근을 요청한 점 등을 근거로, 사용자가 노무수령을 거부한 것으로 평가하고 확정적인 해고의 의사표시를 했다고 판단했다.
해고의 서면통지에 관련해서는, 제1·2심은 해고 서면통지를 하지 않고 시도조차 한 적이 없는 점을 해고의 의사표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 근거로 삼았다. 반면 대법원은 서면통지 여부는 해고의 효력 판단요건일 뿐, 해고 의사표시의 존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해고 서면통지를 하지 않았다고 하여 해고 자체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근로자와 사용자의 상황과 언행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므로, 대법원 판결이 권고사직과 해고의 의사표시 해석이 문제되는 다종다양한 사안에 통용되는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해석기준을 제시했다기보다는, 해당 사안의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하여 묵시적 의사표시의 법리를 적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사용자가 근로자의 불성실한 근무태도를 질책하며 ‘이런 식으로 일하려면 그만두라’는 취지의 말을 하고 근로자가 별다른 이의 제기 없이 곧바로 출근하지 않은 경우, 그러한 사용자의 발언이 근로자가 그만두지 않으면 해고한다는 의미로 바로 해석될 수는 없을 것이다.
위 사안에서 관리팀장이 외부에 표시한 의사는 분명 ‘사표를 쓰고 나가라’는 것이었다. 이는 일반적으로 권고사직에서의 사직 제안, 즉 근로계약 합의해지의 청약 내지 청약의 유인으로 해석될 수 있다. 관리팀장이 그 말을 반복하긴 했지만, 같은 대화 도중 거의 시간적 간격 없이 연속적으로 한 것이어서 그 횟수가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또한 관리팀장이 ‘해고시키는 거요, 지금’이라는 근로자의 말에 ‘사표 쓰고 나가라’는 말을 했는데, 관리팀장이 근로자의 무례한 발언에 격분한 상태에서 표출한 의사인 점, 영세한 운수업체 직원이 해고와 권고사직의 법률적 의미와 차이를 알고 대답했을 가능성이 낮은 점을 고려하면, 이를 과연 해고의 확정적 의사표시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뿐만 아니라, 근로자가 말다툼이 있었던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은 행위는 대법원과 같이 근로자가 해고를 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지만, 반대로 회사측이 사표를 쓰라고 한 상황에서 근로자가 묵시적으로 사직의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근로자가 출근 의사를 밝히거나 대표이사에게 근로계약관계 유지 여부에 대해 확인하지 않은 채 약 3개월이나 출근하지 않았다면 근로자도 사실상 근로관계를 유지할 의사는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회사측은 사직 권고를 한 상황에서 근로자가 출근하지 않는 것을 묵시적인 사직의 의사표시(사직권고에 대한 승낙이든, 사직의 청약이든)로 인식하면서, 근로자에게 출근 요청을 하지 않음으로써 이를 용인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당사자의 명시적 의사표시가 없는 상황에서는, 여러 간접사실을 기초로 당사자의 주관적 의사를 추단할 수밖에 없고, 그 의사표시 해석 여하에 따라 해고인지, 아니면 합의해지인지 전혀 다른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현실에서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해 질책 등을 하다가 감정 싸움으로 번져 사직을 요청하는 발언을 하는 경우, 이에 대해 근로자가 “지금 해고한 거냐?”라고 계속 물어서 사용자로부터 “그래, 그럴거면 그만둬. 해고야”라는 답변을 받아내고, 해고를 당했으며 출근을 하지 않다가 3개월의 노동위원회 부당해고구제신청 제척기간 종료 즈음에 구제신청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사용자의 해고 의사표시 존재만 인정되면 해고 서면통지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부당해고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고, 원직복직 대신 금전배상을 선택해 부당해고기간 동안 약 2~3개월치의 임금을 받는 것이다. 이처럼 비록 소수라도 일부 악용되는 사례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노동위원회에서는 사용자의 일방적 해고의 의사표시가 부존재했다는, 다소 엉성해 보이지만 사안의 구체적 타당성을 기하는 판단을 해왔던 것은 아닐까. 위 대법원 판결 사안에서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제1심, 제2심까지 4차례나 해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법률행위론 내지 의사표시 해석 원칙에 비추어, 사용자가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해고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고 사직 권고를 한 경우, 사용자의 언행을 해고 의사로 넓게 추단하거나 의제하는 것은 곤란하다. 사용자로서는 권고사직 협의 과정에서 사직 권고를 하였다고 생각하고 서면 통지를 하지 않았는데, 사후적으로 묵시적 해고로 인정될 경우 해고 서면통지 위반으로 곧바로 부당해고라는 불의타를 맞기 때문이다.
근로자 보호도 매우 중요하지만, 사용자의 명시적 의사표시가 없는 상황에서 해고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구체적·개별적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살피고, 근로자측의 권리남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채 사용자의 실질적인 의사도 왜곡되지 않도록 하여 근로관계의 존속과 종료에 관한 당사자의 신뢰와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해고를 넓게 인정하는 것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윤혜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