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이혼했더라도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혼인 관계가 이미 해소됐다면 혼인을 무효로 돌릴 법률상 이익이 없다고 본 기존 판례가 40년 만에 변경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3일 A씨가 전남편 B씨를 상대로 제기한 혼인 무효 확인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혼인을 전제로 수많은 법률 관계가 형성된 만큼 무효 확인을 구하는 것이 관련된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일 수 있다”며 “이혼 후에도 혼인 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A씨는 2001년 12월 B씨와 결혼했다가 2004년 10월 이혼했다. 이후 A씨는 “혼인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 강박 상태에서 혼인에 관한 실질적 합의 없이 혼인신고를 했다”며 소송을 냈다.
1984년 대법원 판례에서는 ‘이혼신고로 해소된 혼인 관계의 무효 확인은 과거 법률관계에 대한 확인이어서 이익이 없다’고 본다. 1심 재판부는 이 같은 종전 판례에 따라 원고의 청구를 각하했고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혼 후에도 혼인 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확인의 이익을 부정한다면 혼인 무효 사유의 존재 여부에 대해 법원 판단을 구할 방법을 미리 막아버림으로써 국민이 온전히 권리구제를 받을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로 일반적으로 확인 이익이 인정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대법원은 작년 12월 조희대 대법원장(사진)이 취임한 뒤 약 6개월 만에 첫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했다. 작년 9월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마지막 전원합의체 선고 이후 약 8개월 만이다. 전원합의체는 기존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거나 사회적 파급력이 큰 중요한 사건을 다룬다.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아 대법관 12명(법원행정처장 제외)과 함께 다수결로 판결한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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