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성능이 좋아지면 미래에는 의사의 개입 없이 AI만으로도 의료행위 하는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22일 서울 강남구에서 ‘볼파라헬스테크놀로지 인수합병(M&A) 완료’ 기자간담회를 개최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양사는 공통으로 암 정복이라는 목표를 갖고 있다”며 “소프트웨어 AI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확신으로 M&A를 진행한 것”이라고 했다.
루닛은 지난해 9월 볼파라 경영진과 처음 만나 M&A를 제안했다. 이후 같은 해 11월 독점적 실사에 착수한 뒤, 12월 인수 계약을 체결하는 등 빠른 속도로 M&A를 추진했다. 올해 초 뉴질랜드 해외투자규제청(OIO)과 고등법원으로부터 잇따라 투자 계획안에 대한 승인을 획득했다.
이달 초 1665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지난 21일 볼파라 지분 100%를 2600억원에 취득, 자회사 편입을 최종 완료하며 8개월 간의 M&A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날 서 대표와 테리 토마스 볼파라 대표는 M&A 완료 소식과 함께 통합 후 미래 비전을 발표했다.
루닛은 볼파라 인수를 통해 유방 촬영 데이터 1억1700만 장을 확보했다. 매년 2000만 장이 추가로 늘어난다. 서 대표는 “루닛의 AI 유방암 진단 제품 루닛 인사이트 MMG는 5년 동안 수집한 유방 촬영 데이터 30만 장을 학습시켰다”며 “볼파라 인수를 통해 5년 동안 루닛이 모았던 데이터의 70배가 넘는 양을 얻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했다.
의료 AI는 모델의 크기와 데이터 크기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모델의 크기에 대한 대응은 하드웨어를 장착하면 된다. 반면 의료 데이터가 가장 걸림돌이다. 루닛은 국내외 종합병원들과 연구협약을 맺고 일정 금액을 지불해야만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초거대 AI 시대를 앞서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법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향후 루닛의 초거대 AI를 완성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볼파라의 방대한 데이터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서 대표는 “의료용 초거대 AI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최대 1억, 1000만 장 규모의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볼파라 인수는 단순한 매출 증대가 아니라 의료 AI 시장에서 루닛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볼파라는 미국 병원 2000여 곳에 유방암 검진과 관련된 AI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다. 유방 조직의 밀도를 정량화해 유방암 위험 평가에 도움을 주는 ‘볼파라 덴서티’가 대표 제품이다. 볼파라는 미국 유방암 AI 진단 시장에서 점유율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은 하루 8시간 동안 3~4초마다 한 장씩 의료 영상을 판독해야 할 정도로 업무량이 과중해 AI 도입 필요성이 해마다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미국 질병예방 특별위원회(USPSTF)가 유방암 검진 연령을 기존 50세에서 40세로 앞당겨 앞으로 40~75세 여성은 격년으로 유방촬영을 받도록 권고한다. ‘유방암 검진 권고안’에 따라 미국 내 유방암 검진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예상한다.
토마스 대표는 “최근 들어 볼파라는 워크플로우 플랫폼에 폐암 및 폐 결절 조기진단 소프트웨어를 연계해 사용하는 등 유방암 외 시장으로의 확장 기조에 있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루닛 AI 솔루션을 탑재하게 되면 유방암은 물론 폐암 등 다양한 검진 시장 공략에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루닛은 내년 매출 1000억원, 흑자전환이 목표이다. 특히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aaS) 특성상 높은 마진율을 이룰 것으로 내다봤다. 서 대표는 “루닛은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서, 볼파라는 미국에서 판매 채널이 잘 구축돼 있기 때문에 서로 제품을 크로스 유통하는 데 큰 시너지가 나올 것”이라며 “내년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해 글로벌 의료 AI 시장을 리딩하는 회사가 되겠다”고 덧붙였다.
김유림 기자 you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