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퓨얼셀이 두산그룹의 자회사 하이엑시엄의 기업공개(IPO)를 위해 수천억원어치의 재고를 떠안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증권가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두산퓨얼셀의 유동자산 중 재고자산은 지난 1분기 4841억원으로 집계됐다. 2020년 1122억원에서 3년여 동안 네 배 넘게 급증했다.
두산퓨얼셀의 최근 재고 규모는 지난해 연간 매출 2609억원의 두 배 수준이다. 지난해 기록적 재고량을 보였던 삼성전자가 연 매출의 약 20%였고 같은 연료전지 기업인 미국 블룸에너지 역시 40%가 안 되는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높다.
증권가는 두산퓨얼셀이 두산그룹의 미국 연료전지 법인 하이엑시엄의 재고를 떠안은 것으로 보고 있다. IPO를 추진 중인 하이엑시엄의 기업가치를 올리기 위해 판매하지 못한 수천억원 규모의 재고를 두산퓨얼셀이 받아줬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이엑시엄은 2020년부터 올 1분기까지 7403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중 73.4%에 달하는 5438억원이 두산퓨얼셀과의 거래에서 나왔다. 매출 규모를 키운 하이엑시엄은 지난해 2000억원에 달하는 IPO 전 기관 투자(유상증자)를 유치했다.
정형락 두산퓨얼셀 대표가 하이엑시엄 대표를 겸직하고 있다는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엑시엄이 생산한 물건을 두산퓨얼셀이 무리해서 사들이고 있다는 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그룹 관계사가 아닌 제3자가 판매한 연료전지였어도 두산퓨얼셀이 저만큼 매입했을지가 관건"이라며 "관계사의 물건이기 때문에 무리해서 샀다면 두산퓨얼셀 경영진에게 배임 소지가 있다"고 했다.
재고가 기록적인 수준인데도 두산퓨얼셀은 생산공장 가동률을 지난해보다 높였다. 올 1분기 두산퓨얼셀의 익산공장 가동률은 68%로 지난해 연간 가동률(38%)의 약 두 배가 됐다.
한 회계 전문가는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르면 생산 시설 감가상각비 등 고정비는 그 시설에서 생산한 물건에 균등하게 나눠 산입된다"며 "물건이 판매됐을 때 이를 비용으로 인식하고, 재고로 남아 있을 때는 그러지 않기 때문에 재고를 늘리면 당장의 비용을 줄여 영업이익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두산퓨얼셀 관계자는 "하이엑시엄에서 연료전지를 매입한 건 두산퓨얼셀의 경영상 필요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서 하이엑시엄의 상황과는 무관하다"며 "정부의 연료전지 발주가 늦어져서 재고가 쌓였는데 최근 발주가 재개됐고, 하이엑시엄에서 온 재고가 연내 대부분 소진될 전망"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올 1분기 익산공장 가동률(생산실적/생산능력)이 올라간 건 지난해 생산라인 일부를 손상 처리해 분모인 생산능력이 작아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전문가는 "재고를 무리해서 떠안으면 그 기업의 주주에게 피해가 가고, 재고를 떠넘긴 기업도 가치가 과장되기 때문에 상장 뒤 투자자가 피해를 입는다"며 "회사는 IPO에서 많은 돈을 끌어모으고 무리한 거래에 따른 피해는 투자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