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러시아·북한 3자의 ‘밀월관계’가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7일 시작된 집권 5기 첫 해외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16일 북한을 상대로 하는 미국과 동맹국의 군사적 도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두 정상은 양국의 우호관계를 과시하고 더 높은 수준의 경제협력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는 ‘정치적 해결’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美 맞서 밀착하는 中·러
중국 중앙TV(CCTV)에 따르면 두 정상은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러 정상회담 후 1만2727자(중국어 기준) 분량의 공동성명에 이 같은 내용을 담았다.이들은 “양국은 미국 및 동맹국이 군사 영역에서 위협적으로 행동하고 북한과의 대결 및 유발 가능성이 있는 무장 충돌을 도발해 한반도 형세의 긴장을 격화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했다. 또 “양국은 미국이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 군사적 긴장 형세를 완화하고, 유리한 조건을 만들며, 위협·제재·탄압 수단을 버리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북한과 다른 국가가 상호 존중하고 서로의 안보 우려를 함께 고려한다는 원칙 위에서 협상 프로세스 재가동을 추진하길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또 “정치외교 수단이 한반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출구”라며 “국제사회가 중국과 러시아의 건설적인 공동 이니셔티브를 지지해주기를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작년 3월 시 주석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내놓은 성명서에서 “한반도 정세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관련 당사국들이 침착하고 자제하며, 상황 완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던 것에 비해 훨씬 강한 톤으로 대북 제재 해제 등을 요구한 것이다.
반(反)서방 외교에 의기투합한 두 정상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미국이 절대적 군사적 우세를 유지하기 위해 전략적 안정을 파괴하려는 기도에 엄중한 우려를 표한다”며 미국을 비판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군사 대결에서 반복된 패배에 대한 복수로 러시아 민간인들을 죽이고 있다”고 주장하며 러시아의 침공을 옹호하고 있다.
○2시간30분간 회담 후 성명 채택
시 주석은 이날 푸틴 대통령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언제나 러시아와 함께 서로 신뢰하는 좋은 이웃, 좋은 친구, 좋은 동반자가 될 용의가 있다”며 “(러시아와) 손잡고 세계의 공평·정의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푸틴 대통령은 이에 “양국 간 협력은 기회주의적이거나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이 아닌, 세계 무대의 안정화 요인”이라고 말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날 두 정상은 소인수 회담부터 확대 회담까지 총 2시간30분간 회담하고 포괄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경제적 협력관계 강화도 이날 주요 의제였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러시아는 중국의 4대 무역 상대국이 됐다”며 중·러 교역의 90%가량이 미국 달러화가 아니라 러시아 루블화나 중국 위안화로 결제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양국 간 협력의 우선순위로 에너지, 산업, 농업을 꼽았다. 시 주석은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수립할 용의가 있다”고 화답했다. 두 정상이 서명한 공동문서 10개에는 양국 국경 지역인 볼쇼이우수리스키섬 공동 개발, 중국 소고기 수출, 정보 교환 등이 포함됐다.
푸틴 대통령은 중국과 함께 세계무역기구(WTO)·주요 20개국(G20) 모임 개혁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두 정상은 이날 서로에 대한 친밀감을 과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집권 5기 첫 방문국으로 중국을 택했고, 중국은 국무원 여성 최고위직(서열 8위) 선이친 위원과 100여 명의 의장대를 공항에 보내 푸틴 대통령을 맞았다.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을 “내 오랜 친구(老朋友)”라고 칭했다.
○친밀감 과시했지만 속내는 복잡
사실상 종신집권을 굳힌 두 ‘스트롱맨’이 친밀감을 과시했지만 속내는 동상이몽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는 전쟁 이후 과도하게 높아진 대중(對中) 경제적 의존도가 부담스럽고, 중국은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가 서방에 공격 빌미를 제공할 수 있어서다. 최근 프랑스 등 유럽 3개국 순방에 나선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과 과도하게 밀착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유럽 내 대중 견제 목소리가 커지는 부담을 안게 된다.전통적 우방과의 공조를 강화하고 있는 푸틴 대통령이 귀국 전 북한을 방문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푸틴 대통령이 이번 방중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찾겠다는 약속을 이행할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푸틴 대통령은 17일 북한과 가까운 하얼빈을 찾는다.
송영찬/이상은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