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계인입니다. 디자이너와 작가 사이 그 어딘가를 유영하죠. 디자인과 미술,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채 계속 경계인으로 도전하며 살고 싶습니다.”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허문 작가’로 불리는 김영나(사진)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자마자 가장 먼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산업디자이너로 일한 그는 디자인을 전시장 안으로 들고 들어온 작가다. 스티커, 포스터 등 디자인 작업을 미술관과 갤러리 벽에 걸었다.
디자인을 미술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도전을 해 온 김영나가 자신의 새로운 작업물을 들고 부산을 찾았다. 지난 8일부터 부산 수영구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린 개인전 ‘Easy Heavy’에서다. 김영나의 작품으로 가득 찬 전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디자인과 미술이라는 독립된 영역을 부순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평가에 대해 김영나는 “과거에나 먹혔을 이야기”라며 웃었다. 그는 “이제는 미술에도 디자인 언어를 쓰는 작가가 많아졌고, 전시를 여는 디자이너도 늘었다”며 “어느 곳에 속하기보다는 경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나는 전시장 공간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국제갤러리 부산 전시장 벽에도 형광색 페인트로 긴 선을 그었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깔끔하고 밝은 갤러리 공간에 균열을 내고 싶었다”는 그는 “문 앞 구조물에 기둥이 있는 걸 발견했고, 그 기둥을 기준으로 수평선을 그었다”고 말했다.
작가 김영나와 마치 세트처럼 함께 따라다니는 작업이 바로 ‘SET’다. ‘SET’는 그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작업한 25개 시리즈의 이미지를 모아놓은 책이다. 그는 종이 위 이미지를 책 밖으로 끄집어냈다. 회화로, 설치작으로 옮겨 전시장에 데려다 놓았다. 트레이드마크가 된 책 ‘SET’를 두고 김영나는 “언제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주머니 같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 첫 공간에도 그는 ‘SET’에서부터 구현한 설치 작업을 걸었다.
그는 ‘수집을 갈망하는 작가’다. 스티커에서부터 종이 껍데기까지 무엇 하나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김영나는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수집하며 살아온다”고 말했다. 비슷한 풍경 사진을 찍거나, 같은 장소를 반복해 찾는 것도 모두 수집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그는 “내가 수집이라는 행위를 면밀히 관찰하는 유별난 사람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Easy Heavy’. 쉽다는 의미 외에도 가볍다는 뜻을 가진 단어 ‘Easy’와 무겁다는 의미의 ‘Heavy’라는 단어를 결합했다. 그는 이번 전시엔 “가벼운 개체들과 무거운 의미들이 붙어 있다”고 얘기했다. 이어 ‘가벼운 기념품이 크고 무거운 기념비가 돼 벽에 걸려있을 때 여전히 가볍게 느껴지는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이어진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익숙한 것들을 계속 해나가는 것도 즐겁지만, 낯선 것을 하기 위해 매사 돌다리를 두드리며 건너가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며 “계속 새로운 걸 도전하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