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건물 등 다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던 A씨는 부동산을 양도했는데도 양도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다. 양도대금을 비롯해 충분한 자금 여력이 있음에도 체납한 것이다. A씨는 자녀 명의로 해외 소재 갤러리업체에서 수십억원 상당의 그림과 조각상 등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재산을 은닉했다.
보유하고 있던 토지를 양도한 B씨도 충분한 납부 여력이 있음에도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B씨는 자기 모친이 보유한 고가 아파트를 추후 상속받을 경우 과세관청이 이를 압류할 것으로 예상했다. B씨는 모친이 사망하자 형제·자매 등 다른 상속인과 짜고 아파트에 대한 본인의 상속 지분을 포기했다. 대신 다른 상속인으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현금을 자신의 배우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재산을 은닉했다.
국세청이 고가 미술품 거래로 재산을 은닉하거나 상속 포기를 위장하는 등의 수법을 앞세워 압류를 회피한 악성 체납자 641명을 상대로 강제 징수에 착수했다고 14일 발표했다. 부문별로 보면 △미술품·귀금속·신종 투자상품 등으로 재산을 숨긴 41명 △상속재산이나 골프 회원권 등 각종 재산권을 지능적인 수법으로 빼돌린 285명 △고가주택 거주·고급차량 운행 등 호화롭게 생활하는 315명 등이다.
이번 조사 대상에는 공부(公簿)상 확인이 어려운 고가의 동산을 다른 사람의 명의로 구입하거나, 새로 나온 투자상품에 가입하는 방식 등으로 재산을 은닉한 체납자가 포함됐다. 구체적으로는 가족이나 지인의 명의를 이용해 미술품·귀금속(골드바 등)·개인금고 등을 구입하거나, 신종 투자상품인 미술품 위탁 임대·음원 수익증권 등에 투자해 재산을 은닉한 이들이 조사대상자로 선정됐다.
이 밖에도 다른 상속인과 공모해 재산을 타인 명의로 편법 등기하고, 온라인 도박 사이트를 운영해 불법 수익금을 취득하고 세금은 납부하지 않은 채 호화 생활을 영위한 이들도 적발됐다. 양동훈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9차례에 걸친 잠복과 탐문을 실시해 체납자가 딸 명의로 임차한 고가주택에 실거주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수색 결과 해외 유명 화가의 미술품과 외화 상품권, 귀금속, 해외 명품 가방 등 총 3억원을 징수했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체납자가 직접 팔아 현금화하기 전까지 과세당국이 체납액에 충당할 수 없었던 압류 가상자산에 대한 매각·징수도 본격화했다. 국세청은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이달부터 압류한 가상자산을 직접 매각해 체납 세금을 징수하고 있다.
지금까지 과세당국은 일반 법인과 마찬가지로 가상자산거래소 계좌 개설 등이 어려워 체납자 본인이 압류 재산을 스스로 매각해 현금화하지 않으면 강제 징수를 할 수 없었다. 국세청이 2021년부터 압류한 가상자산은 1080억원이다. 이 중 5월 전까지 현금화해 강제 징수하지 않은 가상자산은 134억원가량이다.
국세청은 이달 11억원 상당의 압류 가상자산을 매각해 현금화했다. 아직 매각하지 않은 123억원 상당의 가상자산도 순차적으로 현금화해 징수할 방침이다.
양동훈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은 “앞으로도 국세청은 고액·상습 체납자의 재산을 끝까지 추적·징수함으로써 조세 정의를 실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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