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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컴 안상수체 만든 '한글의 작가'… 첫 화랑 전시가 부산에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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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문서 작업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써 봤을 프로그램 ‘한글과컴퓨터’. 이들에게는 서체를 고를 때 ‘안상수체’라는 폰트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 어릴 적 책장 한 켠에 놓였던 책 <과학동아>. 그 제목 서체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이 모든 글씨를 만든 사람은 안상수.

그는 글자로 예술을 하는 타이포그래피 작가로, 예술계에서는 이름 세 글자 대신 ‘날개’라는 호로 불린다. 상호 평등한 관계에서 대화를 나누기를 원하는 그는 높임말 대신에 그가 좋아하는 시인 이상의 ‘날개’에서 호를 따 와 붙히고, 주변 사람들에게 편하게 ‘날개’라고 부르기를 권하고 있다.

안상수는 지난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가졌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원로 작가의 업적과 자취를 되짚어보기 위해 기획한 특별전에서다. 2013년 김구림, 2015년 윤석남에 이어 2017년도에는 안상수를 꼽았다.

그런 안상수가 지금 부산 해운대 앞바다가 보이는 전시장에 자신의 인생이 담긴 작품들을 들고 나왔다. 오케이앤피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홀려라‘가 그것이다. 안상수가 미술관, 대안공간 등 비영리기관이 아닌 상업화랑에서 개인전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 한글의 자음 ‘ㅎ’과 조선 시대 민화의 한 종류인 문자도를 결합한 ‘홀려라’ 시리즈를 대거 선보인다. 2017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첫선을 보인 이 연작은 당시 많은 호평을 받으며,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되기도 했다.

한 켠에는 2002년 리움미술관의 전신인 로댕갤러리에서부터 선보인 작품인 ‘알파에서 히읗까지’도 함께 전시됐다. 서양에서는 전부를 뜻하는 관용어로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를 쓰는데, 안상수는 이 관용구와 한글을 결합해 작품을 고안했다. 이 연작은 처음 선보일 당시 미술관 벽에 그려졌고 이후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되어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이번에는 캔버스로, 또 오브제로 고스란히 옮겨왔다.

안상수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시리즈도 공개됐다. 이름은 ‘한글 도깨비’. 살아오면서 한글을 중심으로 작업했던 스스로의 인생을 투영해 만든 작품들이다. 한국 전통문화를 보존하고자 뛰어다니고 자료를 모았던 과거를 작품을 통해 회상한다. 한글 도깨비도 한글과 한자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그려졌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한자 기쁠 희 위에 한글 히읗을 배치했다.



그는 놀라운 재능을 가진 타이포그래피스트였음에도 항상 자격지심의 그늘 아래 살았다고 한다. 1990년대 신세대 그룹으로 불리는 작가들 중 유일하게 해외 유학을 다녀오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외국 문물을 받아들여 표현하는 대신 전통에 집착했다. 그렇게 그는 세종대왕의 한글과 민중의 민화에 꽂혔다. 안상수는 전통을 향한 뚝심있는 노력으로 2007년 구텐베르크상을 수상했다. 상을 받으며 그는 “한글이 나를 구원했다”며 “이제야 완전히 자격지심을 극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전시장에는 어딘가에서 봤을 법한 문양이 그려진 작품도 한 점 걸려있다. ‘이효리 문신’으로 잘 알려진 ‘생명평화무늬’가 바로 그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와 달 아래 물고기와 새, 네 발 달린 동물, 풀, 나무를 인간이 떠받들고 있는 형상이다.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생명의 의미를 담았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외계:인’ 포스터에 쓰인 독특한 문자로 된 작품도 전시된다.

그가 사용하는 검은 물감은 흑연으로 만들어졌다. 붓으로 칠하는 방식이 아니라 붓칼 등으로 밀어내는 과정을 거친다. 온 몸을 사용해야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이 과정 때문에 그가 내놓는 모든 작품 안에는 독특한 질감이 드러난다. 그의 삶과 신념이 담긴 이번 전시는 6월 9일까지 부산에서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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