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달러 환율이 34년 만에 처음으로 달러당 160엔을 돌파했다. 지난 4월 29일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오전 한때 160.17엔까지 치솟았다. 엔·유로 환율도 1999년 유로화 도입 이후 가장 높은 유로당 171엔대까지 올랐다.
이처럼 엔화 환율이 급등(엔화 가치 하락)하는 ‘슈퍼엔저 시대’가 열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슈퍼엔저 현상은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조절하기 위해 연 5.25∼5.5%인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자꾸만 늦추고 일본은 0%에 가까운 금리(연 0∼0.1%) 정책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의 이런 정책은 30년 저물가와 장기 불황을 해소하기 위해 수출 경쟁력을 높이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들은 엔화 가치가 34년 만에 최저를 기록하자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BOJ)이 5조엔(약 44조원) 규모의 시장 개입에 나섰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 결과 엔·달러 환율은 장중 160엔을 돌파했다가 158달러에 마감한 뒤 소폭 하락해 지금은 155엔대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미국 고금리 지속으로 인한 달러 가치 상승으로 원·달러 환율도 상승(원화 가치 하락)하지만 엔화 약세를 따라가지 못해 원·엔 환율이 급락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1~2012년 100엔당 1400원 선이던 원·엔 환율은 2013년부터 2022년 3월까지는 평균 1038원 안팎에서 등락을 보여왔다. 2022년 4월부터 2023년 10월까지는 평균 953원 선에서 등락하다가 엔화가 슈퍼엔저 현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는 평균 893원 선을 오가고 있다. 비교적 장기추세였던 1038원 선에 비해 14%나 하락한 수준이다.
한국 수출품의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부품, 선박, 기계류 등 일본 수출품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제품이 많다. 일본 상품의 달러 표시 가격이 낮아지면서 해외시장에서 경합하는 한국 상품이 가격 경쟁에서 밀린다. 따라서 슈퍼엔저 현상은 한국 경제에도 큰 부담이다. 글로벌 무역에서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경합도는 69.2로, 미국(68.5) 독일(60.3) 중국(56.0) 등 주요 국가 중 가장 높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1%포인트 내리면 한국의 수출 가격은 0.41%포인트, 수출 물량은 0.20%포인트 하락한다는 분석이다.
한국의 수출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회복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 전략산업이다. 그러나 반도체만으론 살 수 없다. 특히 한국 반도체 수출은 여전히 미국이 제재하고 있는 대중국 수출 영향이 크다. 따라서 수출의 온기가 경제 전반에 퍼져서 민생이 회복되려면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도 봐야 한다. 반도체 착시 현상에서 벗어나 경제 전체를 봐야 한다는 의미다.
2018년부터 반도체를 제외하면 무역수지가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제조업 경기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올 1분기에 전기 대비 1.3% 깜짝 성장했는데도 1분기 대기업 생산지수는 7.9% 증가한 데 비해 중소기업 생산지수는 2.0% 감소했다. 경제가 골고루 성장해 온기가 민생 회복까지 미치게 하려면 급락하는 원·엔 환율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미국의 금리 인상과 뒤따른 엔화 약세가 한국 수출에 타격을 주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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