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제1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한 작가가 내놓은 파격적인 작품에 세계 미술계의 시선이 쏠렸다. 나무 막대기에 큰 도자기를 엮어 매달아 놓은 작품. 한국관 야외 마당에서 시작한 작품 ‘겁/소리, 마르코폴로가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인가’는 그 끝이 베네치아 바다에 닿아 있었을 만큼 거대했다.
이 작품을 베네치아까지 싣고 간 작가의 이름은 곽훈. 그는 베네치아 바다에 작품이 닿기 위해서는 무려 120개의 도자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계산한 뒤 당시 한국에서 직접 도자를 구워 베네치아로 실어갔다. 도자 작품과 함께 그가 선보인 사물놀이 퍼포먼스는 ‘동양 미술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곽훈은 한국에서 미술 공부를 이어가기 힘들어지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서양의 재료’로 ‘동양의 정신세계’를 담아내는 방법을 독학하며 연구했다. 그는 불교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로 동양적 사상을 불교의 정신으로 표현했으며, 그렇게 탄생한 ‘기’ 연작은 서양 미술계에 큰 충격을 줬다. ‘기’는 씨앗이 터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너지의 흐름을 여러 가지 색과 질감으로 표현한 연작이다.
곽훈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에서 백남준, 김인겸 등 29년 전 베네치아 한국관에서 함께한 작가들의 작품을 더해 전시를 열고 있다. 전시는 6월 8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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