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테크들이 일본에 대규모 데이터센터 투자를 줄줄이 발표하고 있다. 올해 들어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일본 내 데이터센터 증설 방침을 발표한 데 이어 오라클도 10년간 총 80억달러(약 11조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반면 한국은 지난해 아마존이 인천 서구에 데이터센터 신축 허가를 받은 이후 투자 소식이 뚝 끊겼다.
인터넷 시대에 한국은 아시아 데이터 허브로 일본보다 매력적인 입지를 굳혔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2011년 KT와 함께 한국에 데이터센터 건립 계획을 밝히면서 “일본에선 관동 대지진처럼 전기 공급이 중단됐을 경우 사업 자체를 지속할 수 없다”며 “게다가 한국은 일본 전기료의 절반이고,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측면에서도 일본 이상으로 발전했다”고 했다. 무엇보다 저렴한 전기요금과 우수한 전력 인프라는 한국의 최대 강점으로 꼽혔다.
그런데 10여 년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지만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전력산업 기반이 크게 약해진 상태다. 여기에 환경·에너지 규제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데다, 전자파 발생 등 환경꾼들의 허구적 선동도 걸림돌이다. 현재 인허가를 받은 국내 데이터센터 개발사업 중 약 35%는 1년 이상 첫 삽도 못 뜨고 있는 이유다. 일본의 지진 못지않게 리스크로 부각된 북한 등 지정학적 위협 역시 부담이다.
반면 IT에 뒤처졌던 일본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앞서간다는 목표 아래 데이터센터 건립에만 1000억엔의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다. 정부와 의회, 지자체가 한 팀으로 움직여 토지 확보를 비롯해 인허가 등 각종 문제를 앞장서 해결한다. 미·중 관계가 틀어지면서 아시아 핵심 기지로 반사 이익까지 얻고 있다. 이러니 해외 빅테크들이 한국을 피해 일본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반도체 등 다른 미래 주력 산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데이터센터는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다. 세계 데이터센터 시장은 연평균 22%씩 성장해 2026년에는 1조달러(약 1360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이대로라면 IT 강국으로 자부하던 한국이 AI 시대에 일본에 뒤처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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