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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보던 '그녀가 죽었다'…살인범 된 공인중개사 [김예랑의 영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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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짓은 절대 안 해요. 그냥 보기만 하는 거예요."

버스 옆 고등학생의 카톡을 흘깃 보며 슬며시 웃음 짓는 남성. 평범한 직장인으로 보이는 그에겐 은밀한 취미가 있다. 부동산 고객이 맡긴 카드키로 집에 들어가 남의 삶을 훔쳐보는 것이다. 그는 집주인이 잃어버렸는지 알 수 없을 것 같은 하찮은 물건을 손에 넣고 자신만의 공간에 전시한다. 공인중개사라는 직업은 타인을 관찰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그에게 '럭키'한 직업인 셈.

그날도 구정태는 편의점 창가 자리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 중이었다. 그러다 편의점 소시지를 뜯으면서 온라인에서 검색한 비건 샐러드 사진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수십만 구독자를 보유한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였다. 그녀의 피드에는 명품을 휘두르고 값비싼 호텔 식당에서 식사하는 허세 가득한 사진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유기견 봉사를 시작하며 네티즌들로부터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플루언서'로 추앙받게 된다. 다친 길고양이를 구해 병원에 가면서 라이브 방송을 하고, 시청자들로부터 후원금을 받기도 했다.

구정태는 자신의 레이더를 가동해 한소라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이건 운명인가. 그가 일하는 부동산에 한소라가 집을 내놓기 위해 카드키를 맡긴 것. 아무리 노력해서 한소라의 집엔 '방문'(?) 할 수 없었는데, 횡재다.


한소라의 빈집에 드나들며 막힌 배수관을 뚫고, 그녀가 즐겨 사용한 핸드크림의 향을 맡으며 자신만의 즐거움을 누리던 하루하루가 지났다. 관찰 152일째, 그녀 몰래 전구를 갈아주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소파에 죽은 채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살인이다. 하지만 정태는 허락 없이 집에 들어간 것이 발각될까 무서워 떳떳하게 신고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사면초가에 빠진 구정태, 자신을 옥죄는 수사망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데 이거, 쉽지 않다.
3년 묵힌 '그녀가 죽었다'의 대반전…'범죄도시4' 대항마 될까
자기 과시형 '관종', 관찰의 과잉 '훔쳐보기'가 일상이 된 현대사회. 누군가는 '대관종의 시대'라고 부른다. 소위 '잘 나가는' 자기 모습을 전시하면서 타인의 관심을 끌고, 또 이를 맹목적으로 훔쳐보는 이들도 있다.

김세휘 감독의 연출 데뷔작 '그녀가 죽었다'는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행태를 사실적으로 포착하고 SNS의 문제점을 스크린에 옮기는데 고민을 거듭한 흔적이 보인다.

별다른 죄의식 없이 타인을 훔쳐보고 기념품처럼 물건을 간직하는 구정태의 모습은 병들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난 내가 제일 불쌍해"라며 거짓과 위선으로 자신을 만들어간 소라도 병적인 심리를 보여준다.


영화는 가벼운 템포로 시작한다. 마치 일상물과 같은 내레이션으로 말이다. 정태와 소라의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러닝타임 103분이 훌쩍 지나가 있다. 그만큼 몰입도가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시신과 맞닥뜨려도 신고는커녕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사람의 죽음 앞에서 죄책감 보다 자신의 평판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고, 인간의 죽음보다 자신이 키우던 개미의 죽음에 더 슬퍼하는. 이런 모습의 캐릭터에서 섬뜩하고 불쾌하고 찝찝한 감정을 느낀다.

영화 역사상 이런 캐릭터들만 모으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비정상적이고 비호감이다. 이를 연기한 배우 변요한과 신혜선은 연기 차력 쇼를 벌이는 듯하다.

김 감독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SNS가 사회의 주요한 소통 창구가 되면서 관종, 염탐, 관음 등이 부작용처럼 나타난 것인데 캐릭터로 상황을 보고 대부분 경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이어 "범죄 미화에 대해 우려를 하면서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스스로 경계했다"며 "관종이나 관음의 끝에 있는 인물을 보여주고 관객이 동정할 틈 없이 만들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잘 판단해 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구정태를 연기한 변요한은 "관객들이 불쾌감을 느끼셨다면 대성공"이라고 말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사실 이 영화는 팬데믹을 이유로 3년이나 묵혀뒀던 작품이다. 2021년 상반기 촬영을 끝낸 후 2024년에서야 빛을 보게 됐다. 손익분기점은 150만명이다.

일부 영화 관계자들은 '그녀가 죽었다'에 대해 "사회적 문제를 스릴 있게 담아내면서도 장르적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하며 현재 박스오피스 독주를 이어가고 있는 '범죄도시4'의 대항마가 되지 않을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한 엔터 관계자는 "요즘은 크랭크업이 1년만 지나도 '올드하다'며 눈치를 채는 관객들이 있다"면서 "'그녀가 죽었다'는 사회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지녔기에 편견을 뒤엎고 박스오피스에서 이름을 새길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오는 15일 개봉.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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