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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투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BM)을 갖춘 곳이 드물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투자 심리가 과열된 탓에 시제품이 없어도 기업가치가 수십억 달러를 치솟는 사례가 나타났다. AI 스타트업 전반의 경제성이 왜곡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금융정보업체 CB인사이츠를 인용해 지난해 AI 스타트업이 조달한 투자금이 218억달러(약 30조원)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1년 전보다 5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스타트업 한 곳이 투자라운드 한 번을 거칠 때마다 약 5100만달러를 조달했다. 업계 평균값인 800만달러보다 6배 이상 큰 규모다.
문제는 이 스타트업 대부분이 제대로 된 수익원을 갖추지 못한 상태라는 점이다. 실제 AI를 활용해 지능형 컴퓨터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인 임부는 설립 2년 만에 2억 1000만달러를 조달했다. 기업가치는 10억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껏 BM을 구축한 적이 없다. 링크트인 창업자 리드 호프먼이 차린 인플레이션 AI도 설립 이듬해 15억달러를 조달했지만, BM은 전무하다.
투자금 1억달러 이상 조달한 신생 스타트업들도 비슷한 처지다. 디지털 아바타 개발업체인 캐릭터 AI는 지난해 1억 5000만달러를 모았지만, 매출을 기록하지 못했다. 코딩 보조 스타트업인 매직 AI도 지난 2월 1억 1700만달러를 모았지만, 매출은 '0'에 가깝다.
AI 스타트업 메리테크의 알렉스 클레이턴 이사는 "모두가 AI가 미래라고 믿기 때문에 실패 사례가 나올 때까지 막대한 투자금이 쏟아질 것"이라며 "문제는 이런 비즈니스 모델이 실제로 어떤 형태로 구현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AI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를 산출할 때 다른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연간 반복 매출(ARR)을 계산할 수 없어서다. 아직 대다수의 대기업이 AI 모델을 실제 업무에 적용하는 사례가 드물다. 따라서 안정적으로 소프트웨어 계약을 맺고 매출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스타트업도 없다.
미국의 벤처캐피털 알티미터캐피털의 설립자 브래드 게스트너는 "알티미터에서는 AI 스타트업을 평가할 때 ARR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며 "실험적인 수익 모델을 가정하고 기업가치를 알아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AI 스타트업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 미국 최대 벤처캐피털(VC) 중 하나인 세쿼이아캐피털은 지난 3월 엔비디아의 AI 반도체에 들어간 투자금이 약 500억달러에 달했다고 추정했다. AI 반도체가 대중화되면 스타트업의 입지가 급격히 확대될 것이란 관측이다.
소냐 황 세쿼이아캐피털 파트너는 "AI 인프라가 구축되고 나면 미래가 찾아올 것"이라며 "다만 AI 반도체를 제조하는 데 드는 비용은 지금까지 나온 투자금을 초과한다"고 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