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거대 야당을 상대해야 하는 원내대표 후보 물색에 난항을 겪고 있다. 중진 의원들이 모두 고사해 황우여 당 상임고문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지명한 상황에서, 원내대표 후보군마저 '기근'에 가까운 구인난에 시달리는 모습이다.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오는 3일 22대 국회 초대 원내대표를 선출한다. 후보 등록 마감일(1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원내대표를 맡겠다고 나서는 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차기 원내대표 후보로는 4선이 되는 박대출 의원, 3선이 되는 김성원·송석준·성일종·이철규·추경호 의원 등이 의사와 무관하게 거론됐다.
그러나 유력 후보로 여겨지던 김도읍 의원은 전날 불출마를 선언했고, 3선 의원 중 유력 후보였던 추경호 의원 역시 불출마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찐윤 원내대표 후보'로 당 안팎에서 주목받은 이철규 의원 역시 아직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하지는 않았다. 이 의원은 당내에서 '친윤 원내대표 불가론'이 계속되자,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선인 총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장고에 들어갔다.
그런데도 현재로서 원내대표 출마를 강력하게 시사한 이는 이 의원이 유일하다. 이에 당내에서는 각종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5선이 되는 윤상현 의원은 이날 오전 자신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이 의원이 원내대표를 맡는 데 대해 "민의를 거스르는 행위"라고 강하게 날을 세웠다. 서울 종로에서 낙선한 최재형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선수교체 없이 옷만 갈아입혀 다시 뛰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고, 인천 연수구을에서 낙선한 김기흥 전 후보도 K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야당이 공격할 수 있는 소재를 제공할 것"이라며 "총선에 나타난 민의에 대해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당내에서는 원내대표 선출 연기에 대한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날 열린 당선인 총회에서는 오는 3일에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얘기도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조해진 "당 구하겠다고 몸 던지는 사람 없는 암담한 현상"
이 같은 상황에 당내에서는 쓴소리가 나온다. 3선 중진인 조해진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이 겨우 사흘 남짓 남았는데, 위기의 당을 구해보겠다고 몸을 던지는 사람은 없고, 있던 사람도 오히려 뒤로 빠지는 암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실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거나, 다들 이 시기의 원내대표가 성배가 아니라 독배라고 생각해서일 것"이라며 "이대로 가면 정권 심판 책임자가 당의 얼굴이 되어 국민 앞에 나서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퇴행적 사태에 대해서 내부에서 아무 이야기도 안 나오는 상황,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선의 대안조차도 나서지 않는 당의 현실이 더 절망적"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시기일수록 강한 대표가 필요하다면서 대통령 측근의 출마를 합리화한다"며 "총선 참패로 정권의 힘이 쭉 빠졌고, 대통령이 야당의 탄핵 공세에 몰리고 있는데, 대통령실을 뒷배로 가진 것이 무슨 힘이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조 의원은 "원대 경선이 임박한 이 시점에, 당은 이제 어떻게 하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나는 일단 4년 임기를 확보했으니까 됐다, 당은 어떻게 되겠지, 용산에서 가르마를 타든 누가 나서든 알아서 대처하겠지' 하는 식으로 방관하고 있다가는, 머지않아 공도동망의 쓰나미에 한꺼번에 쓸려가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