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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항의 소소한 통찰] 밤양갱과 청룡, 과거에 오늘의 트렌드를 입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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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선에 나선 후보 한 명이 유튜브에 MZ세대와 면접 형식으로 문답을 주고받은 영상을 올렸다. 첫 질문이 ‘밤양갱을 아십니까’였다. 후보자는 “밤으로 만든 양갱?”이라고 주저하며 대답했다. 질문자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MZ세대 사이에서 아주 핫한 노래’라고 설명하자, “노래였냐”고 놀라며 가수가 누구인지 물었다. ‘비비’라는 대답에 후보자는 “비비는 비비크림밖에 모른다”고 아재 개그로 받았다. 이후 후보자는 ‘허허허’를 연발하며 썰렁한 분위기를 모면하기 바빴다.

지난 2월 13일 음원 발매를 시작한 밤양갱 노래는 한 달도 안 돼 음원과 방송 차트를 석권했다. 노래 인기와 함께 밤양갱과 자매 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연양갱 상품까지 덩달아 매출이 늘었다. 할머니 입맛을 지닌 밀레니얼이라고 해 ‘할매니얼’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소위 ‘할매니얼 디저트’에 양갱이 들어갔다. 과거에 속한다고 여겨지던 것들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 사례가 아주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분야에서 일어난 것이다.

‘청룡열차’라고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이 질문을 2000년 이후에 태어난 대학생들에게도 물어봤다. 그들도 옛날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라는 사실을 거의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아느냐는 물음에 한 학생이 자기 부모는 아직도 롤러코스터를 청룡열차라고 부른다고 답했다. 몇몇 학생이 웃음을 터뜨리면서 자기네 부모도 그런다고 동의했다. 그들에게 청룡열차는 부모 세대의, 롤러코스터의 완행열차 같은 느낌의 과거 산물이었다.

그런데 그 20대 초반 학생들에게 과거에 탔던 롤러코스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의 이름을 묻자 놀랍게도 청룡열차가 가장 많이 언급됐다. 그들에게도 청룡열차는 롤러코스터의 대명사로 기능하고 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상표명은 고유명사인데, 부문을 대표하는 보통명사로 확대돼 쓰이는 경우가 꽤 있다. 배 모양의 탈 것이 아래위로 오가는, 외국에서 보통 ‘스윙보트(swing boat)’라고 하는 놀이기구를 국내에선 ‘바이킹’이라고 부르는 게 대표적이다. 청룡열차도 유행에는 뒤처진 느낌을 주지만, 롤러코스터라는 보통명사의 대체어로 기능하고 있다.

이 청룡열차가 ‘느닷없이’ 롤러코스터가 아닌 다른 분야에 등장했다. 지난 1일 KTX 중 가장 빠른 열차로 선보인 차세대 동력 분산식 고속열차(EMU-320)의 이름을 ‘KTX-청룡’으로 명명한 것이다. 빠름을 상징하는 열차, 그중에서도 가장 빠른 롤러코스터, 그 롤러코스터를 대표하는 청룡열차의 연상 고리를 거쳐서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코레일 설명에 따르면 속도 이외에 ‘청룡의 해에 탄생한 고속열차로, 보다 높고 화려하게 비상하기를 바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한다. 2010년 이후로 동물 띠에 색상을 붙여서 ‘흑룡’ ‘청마’ 등으로 이름 지어 펼치는 소위 ‘십이간지 마케팅’이 화제가 되곤 한다. 이는 십이간지라는 과거의 전통에 현대적 시의성을 부가하는 시도다. 그리고 색상이 지닌 맑음과 비상(飛翔)의 이미지를 트렌디하게 입히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과거의 롤러코스터 이름으로 박제된 청룡열차를 따와 새로운 KTX 열차를 명명한 건 아니다. 현재도 통하는 속도와 푸르름을 상징하기 위한 의도였다. 그를 위해서는 밤양갱이 젊은 가수의 노래로 트렌디한 간식이 됐듯, 콘텐츠 개선과 마케팅 활동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 창의적 시도가 코레일과 KTX의 이미지를 바꿀 것이다. 처음에 노래 밤양갱을 몰랐지만, 나중엔 밤양갱 노래를 부르고 다닌 그 후보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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