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기세가 무섭다. 아이오와, 뉴햄프셔, 슈퍼화요일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모두 승리해 사실상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4년 전 재선에 실패하고 수많은 사법 리스크에 직면했던 트럼프의 부활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첫째로 눈여겨볼 것은 트럼프가 연일 부르짖는 ‘매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현상이 미국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다. 매가는 미국 최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이다. 미국 국익에 철저히 기반을 두고 있다. 트럼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확립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회의적이다. 동맹국들의 자국 이익 추구로 미국이 ‘호구’가 됐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월가의 황제인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은 “매가를 단순히 극성 세력이나 별종으로 취급하면 민주당이 11월 대선에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매가와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에 실존적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가 동맹을 경시하고 보호주의 정책으로 국제통상 질서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그레이엄 엘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이미 트럼프가 국제정치를 바꾸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을 다시 한번 위대하게’라는 간단명료한 슬로건이 2024년 대선판을 뒤흔드는 배경에는 백인 우월주의가 깔려 있다. 4년마다 백인 유권자 비율이 2%씩 줄어드는 상황에서 매가는 백인의 상실된 자존심을 보상해주는 심리적 역할을 수행한다.
둘째로 미국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인식이 커졌다는 점이다. NBC뉴스는 “미국인의 73%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심화하는 불평등, 저학력 근로자의 생활 수준 저하, 인종적 갈등, 사회보장체계 미비 등이 보편적 미국인들에게 미국 사회가 건전하고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정서를 심어줬다.
트럼프는 워싱턴의 엘리트 정치가 부유층과 고학력층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뤄진 반면 저학력 백인 근로자는 경제·사회적으로 소외됐다고 역설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들이 저성장과 실업 문제가 악화하면서 마약, 알코올, 자살 등 소위 ‘절망의 죽음(death of despair)’에 내몰렸다. 주요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50대 백인 사망률이 상승했다. 저학력 백인의 주류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하락했다. 이들의 분노와 소외 의식을 교묘히 자극한 것이 트럼프 주의다.
셋째로 이민 문제로 미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12월 불법 이민자가 25만 명에 달했다. 이민자가 미국 사회와 경제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이민이 더 이상 아메리칸드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 창업자의 40%가 이민자 출신이지만 불법 이민 문제로 반이민 정서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는 “이민자가 우리의 피를 더럽힌다”며 반이민 감정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민으로 세워진 미국이 이민자 급증으로 백인의 지위가 위협받자 분위기가 표변했다. 전체 이민의 3%만이 합법 이민인 상황에서 불법 이민은 소위 ‘뜨거운 감자’가 됐다. 트럼프의 이민정책을 비판한 바이든이 궁지에 몰렸다.
넷째로 트럼프의 개인적 인기가 큰 몫을 하고 있다. 트럼프의 꿈은 스타가 되는 것이었다. 사업가로서의 성공, 정치 입문, 대권 재도전 모두 그의 스타 의식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스타가 되려면 인기가 있어야 하고 사람들에게 어필해야 한다.
트럼프 포퓰리즘의 정서적 기원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적에 대한 분노와 공격은 트럼프의 일관된 특성이다. 적과의 공존은 그의 인식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 적의 약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사생활 폭로, 개인 비리 공격 등이 자주 구사된다. 트럼프는 미국 정치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정치적 본능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다. 스타성이 강해 쉽게 유권자들을 끌어들인다.
불법 이민 증대,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에 대한 피로감, 바이든의 노령, 지지부진한 경제 회복이 트럼프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트럼프 신드롬이 지속될지가 11월 대선을 좌우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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