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요국이 최근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영구처분시설(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세기 동안 쌓인 방사성 폐기물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여야 정쟁 등으로 방폐장 건설의 첫발도 떼지 못한 한국과 대조된다.
22일 에너지정보문화재단에 따르면 세계 10대 원전 운영국(운전 원전 수 기준)인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한국 캐나다 인도 우크라이나 일본 중 한국과 인도를 뺀 8개국이 방폐장 부지를 확보했거나 부지 선정 절차를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핵무기 재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인도는 습식 재처리 방식을 쓰고 있어 고준위 방폐장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원전을 운영하는 9개국 기준으로 보면 한국만 사용후 핵연료 처리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
최근 몇 년 새 주요국은 방폐장 건설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제까지 쌓인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시설을 만들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일본 원자력발전환경정비기구(NUMO)는 정부에 고준위 방폐장 후보지 1단계 조사 보고서를 제출하고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방폐장은 △1단계 문헌 조사 △2단계 개요 조사 △3단계 정밀 조사를 거쳐 최종 부지를 선정하는데, 일본은 이 중 첫 단계를 마쳤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좀처럼 진척이 없던 일본의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이 속도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은 지난해 6월부터 네 개 후보 부지의 적합성 평가 절차에 들어갔고, 같은 달 캐나다는 최종 후보 부지 두 곳의 조사 결과를 담은 안전보고서를 발표했다. 캐나다는 보고서 결과를 토대로 올해 방폐장 최종 부지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은 1978년 첫 원전인 고리 1호기를 가동한 지 46년이 지났지만 방폐장 건설은 시작도 못한 상태다. 방폐장 건설이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부터 건설해 방폐장 완공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줄여보겠다는 계획이다. 연구용 URL은 방폐장 건설에 꼭 필요한 시설이다. 방폐장 부지 선정과 설계, 건설 등 제반 사항은 연구용 URL에서의 실증 결과를 바탕으로 하게 돼 있어서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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