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방문한 중국 최대 인공지능(AI) 기업 바이두의 베이징 본사. 자율주행 차량 정거장이 설치된 1층 정문을 지나 로비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연표’가 눈에 들어왔다. 바이두가 지난해 3월 개발한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의 AI 서비스인 ‘어니봇’을 미국 오픈AI의 ‘챗GPT’ 등과 비교한 전광판이다.
더 안쪽엔 바이두가 중국 최초로 2018년 독자 개발한 AI 반도체 칩이 전시돼 있다. 바이두는 2021년 미국의 중국 반도체 제재에 맞서 AI 칩 사업부를 분사한 뒤 대규모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업계에선 중국 정보기술(IT) 창업자 최초로 타임의 표지(2018년)를 장식하며 ‘혁신가’라는 찬사를 받은 리옌훙 바이두 창업자 겸 회장이 ‘실리콘밸리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결국 AI 패권은 바이두에 올 것’이란 의지를 사옥 곳곳에 내건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연단에 오른 리 회장은 한 시간 넘게 이어진 기조연설에서 여러 차례 “어니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어니봇이 아직 챗GPT에 한두 달 정도 뒤처져 있지만, 곧 역전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임직원들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어니봇의 힘은 중국의 14억 인구에서 나온다. ‘중국의 카카오톡’으로 불리는 텐센트의 위챗처럼 어니봇도 머지않은 시기에 모든 중국인이 쓰게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미 출시 1년1개월 만에 2억 명이 넘는 사용자를 확보했다. 그러자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중국 출시 제품에 어니봇을 내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자 콘퍼런스 현장에 삼성전자 부스가 마련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은 이날 어니봇이 적용된 갤럭시S24 시리즈를 공개했다. 애플도 중국에서 판매하는 아이폰, 아이패드에 어니봇을 탑재하는 방안을 바이두와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AI 개발자 대회에는 홍콩과학기술대 광저우 캠퍼스 학생들이 대거 참석했다. 중국 정부가 AI 인재 육성을 위해 2년 전 세운 학교다. AI과 석사과정을 다니는 리뤄충 씨는 “학생 2000명 중 300~400명은 AI 전공 석·박사”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AI 툴 개발을 위해 엔비디아의 쿠다를 썼지만 요즘엔 바이두 등 국내 툴도 활용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칭화대의 반도체학과 교수는 “칭화대에선 어딜 가나 AI 얘기뿐”이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의 정치·사상 검열은 AI 창작의 자유 측면에서 발목을 잡고 있다. 기자가 어니봇에 톈안먼 사태 등 민감한 질문을 하자 답변을 거부하고 창을 닫았다.
베이징·선전=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