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자국 영사관을 공격한 이스라엘에 보복 공격을 감행하면서 51년 만에 ‘제5차 중동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반년 만에 양국이 서로의 외교시설과 영토를 직접 타격하는 상황에 이르며 ‘보복의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두 나라 모두 선 넘었다”
이란의 이번 공격은 지난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다마스쿠스 내 이란 영사관을 공격한 데 대한 보복 차원으로 이뤄졌다.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13일(현지시간) 국영TV를 통해 “시온주의 단체(이스라엘)가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표적으로 삼은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공격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외신들은 이번 공격으로 양국이 확전의 갈림길에 섰다고 보고 있다. 두 나라는 이란 신정주의 세력이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집권한 뒤 지역 패권과 종교적 이유로 사사건건 부딪치면서도 전면 충돌은 피했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에도 이란은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등 무장단체를 통해서만 하마스를 간접 지원했다. 그러나 1일 이스라엘이 이란 영토나 다름없는 자국 외교시설을 공격했고 이란 역시 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타격했다. 이 때문에 1973년 시리아와 이집트의 이스라엘 침공으로 시작된 4차 중동전쟁 이후 51년 만에 5차 중동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알리 바에즈 국제위기그룹(ICG) 이란 전문가는 “두 나라 모두 선을 넘었다”며 “직접적인 보복에 따른 결과는 재앙적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14일 긴급 전시내각을 소집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우리를 해치는 자들은 누구든 해칠 것”이라며 재보복 방침을 밝혔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이스라엘은 하마스 전쟁을 계기로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단체들을 정리할 뿐만 아니라 이란의 핵시설을 직접 타격하고 싶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란이 핵무장에 성공한다면 사실상 핵무기를 갖췄다고 평가받는 이스라엘의 전략적 우위가 사라진다는 이유에서다. 아랍 매체 엘라프뉴스는 8일 이스라엘방위군(IDF)이 이란 핵시설을 공습하는 모의 훈련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란 역시 “이스라엘이 재보복할 경우 대응은 어제보다 더 강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 “자위권 행사…확전 원하지 않아”
다만 전문가들은 이란이 이번 보복의 수위를 철저히 조절했다고 평가했다. 공격 전날부터 주요 외신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48시간 내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을 예고했을 뿐만 아니라 IRGC는 공격 직후 국영TV를 통해 공격 소식을 알렸다. 또 이란 국영 프레스TV는 IRGC가 이번 공격에서 이스라엘 군사시설만 겨냥했다고 보도했다. 마이클 싱 전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중동 선임국장은 “이번 공격은 철저하게 통보되고 느렸으며 궁극적으로는 실패한 보복”이라고 분석했다.이란이 공격 수위를 조절한 것은 이스라엘이 원하는 ‘보복의 악순환’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란이 미국·영국 등 동맹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과 전면전에 나서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현재 고질적인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이번 조치는 정당한 자위권 행사이며 확전이나 갈등을 원하지 않는다”는 주유엔 이란대표부의 성명도 전면전을 피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영국과 프랑스·독일 등 유럽연합(EU) 주요국은 이란의 공격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다만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국제사회, 특히 영향력 있는 국가가 지역의 평화·안정 수호를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이스라엘 편에 서온 미국을 겨냥한 문구라는 해석이 나온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역 전반에 걸친 파괴적 확전이 가져올 실질적 위험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모든 당사자가 중동 여러 전선에서 대규모 군사적 대결을 초래할 수 있는 행위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5일 긴급 회의를 열고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과 관련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