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주요 언론이 국제면에서 비중 있게 다룬 두 건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바로 유럽연합(EU)이 3월 7일부터 ‘디지털 시장법’(Digital Market Act)을 전면 시행한다는 소식과 지난달 21일 미국 법무부가 애플을 상대로 시장을 독점하고 경쟁을 저해한다고 소송을 제기했다는 보도다. 디지털 시장법 제정이나 애플의 반독점 피소는 본질적으로 디지털 시장에서 빅테크 기업이 시장 내 지위를 남용해 다른 기업과의 경쟁을 불공정 구도로 형성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EU는 사실상 오래전부터 디지털 규제를 마련해왔다. 대형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책임과 공정한 경쟁을 강조했기 때문에 디지털 시장법 외에도 크고 작은 규제가 존재하고 있다. 개인정보가 EU 역외로 이전하는 것과 관련한 규제는 유명하다. 특히 디지털 시장법은 디지털 서비스에서 외부 앱과 대체 앱스토어를 설치하는 등 자사 서비스와 제3자 서비스를 상호 운용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디지털 규제의 첫걸음으로서 여러 국가가 디지털 시장법을 자국 디지털 규제의 모델로 검토 중이거나 비슷하게 입안하는 중이므로 디지털 시장법은 정보기술(IT)산업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현실적으로 볼 때,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대다수는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이기 때문에 EU의 입장에서는 역내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은, GAFA(구글, 아마존, 현재는 메타로 사명을 변경한 페이스북, 애플)를 비롯한 미국 디지털 기업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U는 앞으로 디지털 생태계에서 시장 점유율 상위 기업이 시장에서 발휘하는 각종 권력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 역시 애플이 아이폰 내 앱스토어에서 사용자들이 타사 서비스에 접근하기 힘들도록 해놨다는 이유로 반독점법 소송을 걸었다. 애플 외에 다른 디지털 기업도 정부로부터 유사한 소송에 걸려 있기는 하나 반독점법 위반으로 인한 피소는 미국 내에서 기업에 가장 큰 타격을 주는 사건이므로 애플의 피소는 특별한 의미를 주고 있다. 디지털 빅테크 기업이 매년 천문학적인 자금으로 미국 내에서 로비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번 애플의 피소를 의외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애플은 이를 애플 고유의 비즈니스 모델로 반박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약 미국 정부의 기소에 법원이 정부 편을 든다면 애플은 기존 비즈니스 관행과 관련한 계약 시스템을 전면 수정해야 하며 비즈니스 모델 역시 바꿔야 한다.
결국 이번 소송은 소비자 이익 침해를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미국 정부의 시각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즉, 상호 접근성을 향상해 산업 생태계 내의 경쟁 시스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AT&T 분할을 비롯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반독점법 피소 등 미국 내 거대 기업들은 공정거래 여부에 대한 규제와 감시를 받아왔기 때문에 애플의 피소 자체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번 피소는 디지털 비즈니스의 다양한 영역과 이슈 중 애플의 앱스토어와 관련한 단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결국 미국 정부가 자국 디지털산업을 정책적으로 육성하지만, 그 정책의 핵심적 방향에서는 기존에 추구한 것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역시 디지털 플랫폼 규제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규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 규제가 지향하는 방향의 원칙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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