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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공화국'에서 소리치는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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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는 굶주림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게 꼭 나쁜 건 아니다. 세상 모든 부조리에 분노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 데다 바람직하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왠지 개운치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서울 성북동 제이슨함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데프 리퍼블릭(Deaf Republic)’(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공화국)은 이런 현실을 다룬 전시다. 우크라이나 출신 미국 작가 일리야 카민스키의 시집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귀가 들리지 않는 척한다. 함윤철 대표는 “이 세상에는 수많은 비극과 부조리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이를 외면하며 일상을 살아간다”며 “이런 모순적 상황을 조명하는 작품을 모았다”고 말했다.


전시는 20대 신예 작가 이목하의 ‘화이트 멜로디 케이크’(2024)로 시작된다. 뭉개지고 상한 생크림 케이크를 그린 정물화다. 해골 등을 통해 죽음과 삶의 허무함을 표현한 17세기 ‘바니타스 정물화’ 전통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소재를 현대 한국에 맞게 바꿨다. 생일 파티 등 즐거운 자리에서 흔히 봤을 법한 케이크가 썩어가는 모습, 어두운 청회색 색감과 모호한 표현이 주는 불길함이 현실의 무상함을 상기시킨다.

루마니아 출신 작가 미르치아 수츄가 그린 ‘스트레인지 프룻’(2018)은 전시의 주제 의식이 조금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스페인, 그 전성기에 그려진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이미지를 활용해 제국주의를 비판했다. 스위스 출신 작가 우르스 피셔의 ‘랜드 오브 오퍼튜니티스츠’(기회주의자들의 땅·2022) 역시 ‘기회의 땅’으로 불려온 미국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그림이다.



전시에서는 벨기에 출신 조각가 피터 부겐하우트, 미국의 막스 후퍼 슈나이더 등 올해 광주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재미동포 작가 마이크 리가 사랑을 주제로 그린 올해 신작 ‘블리스’도 주목할 만하다. 신선한 작품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젊은 큐레이션 감각이 돋보이는 전시다. 전시는 5월 4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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