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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폈다, 악기를 켜라'…마법의 주문과 함께 축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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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 has come and blossoms bloom- In the woods of Ueno let the music begin. (봄이 왔고, 꽃은 만개했다. 우에노의 숲에서 음악을 시작하라.)


일본의 봄 최대 규모 클래식 축제인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는 문구다. 지난달 15일 마법 같은 주문과 함께 축제가 시작됐다.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은 우에노에 있는 도쿄문화회관을 중심으로 그 지역 일대에서 펼쳐지는 페스티벌이다.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한 시점부터 벚꽃이 다시 질 때까지 진행되는 축제라는 점에서 낭만적이다. 개막식도 특별하다. 20주년을 상징하는 술을 개봉하는 세리머니가 있다. 개막 공연은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가 함께했다.


세리머니가 끝나면 공연장 직원들은 “이랏샤이마세(いらっしゃいませ)”를 외치며 공연장 입구에서부터 술을 나눠준다. 이제 본격적인 축제의 시작이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페스티벌(3월 15일~4월 21일)은 더욱 화려하다. 르네 파페, 라이너 호넥, 레네케 루이텐, 루돌프 부흐빈더 등 단일 공연만으로도 가슴을 벅차게 하는 무대가 펼쳐진다. 올해도 마렉 야노프스키와 리카르도 무티가 페스티벌을 함께한다는 사실은 일본 클래식 팬들을 설레게 했다.
마렉 야노프스키, 그리고 ‘트리스탄과 이졸데’
가장 주목할 만한 공연은 벚꽃이 한창 만개할 때쯤 열리는 공연이었다. 지난달 30일에 있었던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그중 하나였다. 지휘자 야노프스키와 NHK교향악단이 함께한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콘서트 버전이었다.


본 공연 한 시간 전에는 NHK교향악단 금관 단원들의 퍼포먼스가 있었다. 단원들은 야외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마지막 부분인 ‘사랑의 죽음’을 연주하며 공연이 곧 시작될 것임을 알렸다. 오늘 공연이 단순한 콘서트가 아니라 축제라는 것을 상기시켜 줬다. 1년 중 도쿄에 관광객이 가장 많은 시기이기도 하지만, 공연장 곳곳에 외국인이 눈에 띄었다.

공연은 완성도가 높았다. 스튜어트 스켈턴(트리스탄), 비르기테 크리스텐센(이졸데) 등 참여한 성악진도 훌륭했지만, 더 놀라운 건 이 어려운 음악을 소화하고 있는 오케스트라였다. NHK교향악단은 음악을 단지 해내는 수준을 넘어, 음악을 표현하고 있었다. 야노프스키와 함께하는 NHK교향악단은 월드클래스라고 불러도 손색없었다. 이들은 서로의 소리를 숨죽여 듣고 있었으며, 치밀한 섹션 간 밸런스로 신비로운 바그너 음악을 훌륭하게 무대 위에서 재현했다. 마법 같은 순간들은 관객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2막에서 두 남녀의 2중창이 절정에 이를 때쯤, 곳곳에선 관객들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노프스키의 음악을 어떤 일이 있어도 따라가겠다는 단원들의 의지도 대단했다. NHK교향악단은 야노프스키와 수많은 작업을 했는데, 그 오랜 시간의 음악적 교류가 뛰어난 연주로 나타나고 있었다.

NHK교향악단이 바라보는 곳은 더 이상 아시아가 아니다. NHK교향악단은 2025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말러 페스티벌’에도 진출한다. 베를린 필하모닉(키릴 페트렌코), 로열 콘세르트 헤바우(클라우스 메켈레), 시카고 심포니(얍 판 츠베덴) 등이 참여해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페스티벌이다. NHK 교향악단은 상임 지휘자 파비오 루이지와 말러 교향곡 3번과 4번을 연주한다.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유일한 아시아 오케스트라다.
도쿄 곳곳이 바그너 물결

일본 클래식 시장의 저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3월엔 무려 세 곳에서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연주됐다.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 무대뿐만 아니라 오노 카즈시의 지휘로 신국립극장에서도 열렸고,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과 협업한 어린이용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동시에 진행됐다. 한국에서는 2013년 바그너 탄생 200주년에 맞춰 전막이 콘서트 버전으로 국내 초연됐을 뿐이다. 내년에나 국립오페라단이 처음으로 오페라 전막 공연에 도전할 만큼 무대에 올리는 것 자체가 초대형 프로젝트다.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나 4월에도 이어진다. 마지막 벚꽃 잎이 떨어질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야노프스키와 NHK교향악단은 바그너 ‘니벨룽겐의 반지’ 갈라 콘서트로 관객을 다시 만나고, 무티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르디 ‘아이다’를 무대에 올린다. 도쿄의 클래식 애호가들은 하루도 쉴 틈이 없다. 그 밖에도 푸치니 ‘라보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일렉트라’가 있고 축제 막바지엔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의 실내악 무대도 남아 있다.
페스티벌의 진짜 주인공
공연장 밖에도 축제가 있었다. 축제는 우에노역에서부터 시작된다. 올해도 우에노역 역사 안에는 벚꽃으로 장식된 피아노가 등장했다. 역을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피아노 앞에 앉아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을 연주했고, 자작곡을 선보이는 중년의 남성도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작년에 타계한 일본의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오후 6시를 지나 붐비는 퇴근길은 더 특별했다. 직장인들이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 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동시에 도착한 남성 직장인들이 서로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는 모습도 재밌었다. 누구에게나 반복되는 퇴근길이 음악으로 더 특별해지는 순간이었다. 프로 예술가가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들이 자신의 음악을 꺼내 더 뭉클했다.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의 진짜 주인공이다.

그 밖에도 벚꽃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야외 공연은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을 더 의미 있는 축제로 만들었다. 우에노역은 봄철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인접한 우에노 동물원뿐만 아니라 우에노 공원은 벚꽃 나들이 최대 명소다. 주말이면 돗자리를 깔고 벚꽃 아래 누워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이때 어디선가 클래식 음악이 연주되면 사람들이 자리를 옮겨 음악 앞에 모여 앉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데, 어떤 화려한 라인업의 무대보다도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광경이다.

도쿄=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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