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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서 산으로… 한국화가 한경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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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는 산에서 배우고, 나이가 들면 강에서 배워라'라는 말이 있다. 격동하는 산줄기에서 젊음의 용기를 찾고, 인생이 무르익을수록 고고하게 흐르는 강물의 지혜를 구하라는 옛사람들의 조언이다.

한국화가 한경혜(49)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활동 초기에 수묵담채로 그린 '물속 풍경'으로 알려진 한 작가는 완연한 중년을 맞아 설악산을 찾았다. 내면의 갈증을 느껴 산소 가득한 물을 마시고 싶었다고. 눈이 시릴 듯 청아한 늦가을에 희운각과 이를 둘러싼 천불동계곡의 오련폭포를 만났다.

'설악산 희운각'은 한경혜 작가가 바라본 산수를 부감법(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풍경)으로 조명한 작품이다. 그는 작가 노트에 "설악산을 화려한 산세와 변화무쌍한 날씨로 도착지까지 긴장을 느끼게 했다"며 "집으로 돌아와서야 안도의 한숨으로 순간의 생명이 지탱되는 것 같았다"고 썼다.



서울 관훈동 갤러리인사아트에서 열리고 있는 열두번째 개인전 '우리 산, 우리 물'의 주제는 설악산과 전남 화순 운주사 석불이다. 2002년 통인화랑 물항아리 전을 시작으로 줄곧 '물속 세계'에 골몰해온 작가가 처음 물 밖의 세계로 눈길을 확장한 셈이다. 작가는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실경(實景)을 그림으로 전달하고자 한다"고 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한경혜 작가한테 불상은 빠질 수 없는 소재다. 전남 화순군 천불산 기슭을 걷다가 마주한 운주사가 대표적이다.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개씩 있다"(동국여지승람)고 전해지는 '천불천탑(千佛千塔)' 전설의 주인공이자, 일어나면 1000년간 태평성대가 이어진다는 와불(臥佛) 한 쌍이 잠든 곳이다.



옛사람들은 무엇을 기원하며 산자락에 이처럼 많은 불상을 남겼을까. 그 많던 석상은 전부 어디로 갔을까. 작가는 비밀을 간직한 채 남아있는 석불 80여기와 석탑 20여기, 부부처럼 나란히 누운 12m 길이의 대형 와불 한 쌍을 붓끝에 옮기기 시작했다.

대부분 응회암으로 제작된 불상들은 세월이 흘러 풍화됐다. 응회암은 쌓인 화산재가 굳어져 만들어진 퇴적암으로, 쉽게 마모되는 것이 특징이다. 경계가 흐릿해진 불상들의 어눌한 표정은 거칠고 소박하기에 예스러운 멋을 뽐낸다. 작가는 이들의 빛바랜 모습을 먹선과 미점만을 활용해 간결하게 풀어냈다.

작가는 "나에게 다가온 운주사의 석불들은 한없이 끝없는 고달픈 민초들의 삶이자, 카르마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는 삶이었다"며 "각기 다른 형상들이 말하는 부처님의 모습은 평범한 인간세계의 사람들, 즉 우리들의 모습 그 자체였다"고 설명했다.



한경혜 작가는 매일같이 1000배의 절을 하는 화가이자 수행자다. 돌이 갓 지났을 무렵 뇌성마비로 사지를 움직일 수 없었던 그는 일곱살 때 해인사에서 성철 스님을 만났다. "하루 1000배씩 하면 오래 산다"는 스님의 말대로 매일 절을 하자 비틀렸던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고. 이후 홍익대에서 미술학 박사 학위를 받고, 가나아트스페이스 등에서의 11차례 개인전 및 수십건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지천명을 앞둔 작가는 다시 굽이치는 산으로 눈을 돌렸다. 삶의 역경에서도 잔잔한 물을 바라보며 평정심을 유지한 작가한테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박영택 미술평론가(경기대 교수)는 "한경혜는 설악산과 운주사에서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과 한국미의 자연주의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만났던 것 같다"며 "그런 감동을 소박하지만, 더없이 진지하게 사생하고 묘사하고 있다"고 했다.

전시는 4월 1일까지.



안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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