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냉장고에는 남편이 아이에게 시켜 적은 생활 규칙이 5년째 붙어 있다. 그중 문제 있는 문장은 첫 번째 문장이다. “주는 대로 먹을 것.”
히스테리컬한 느낌이 다분하다. 집에 찾아온 손님들은 냉장고에 적힌 규칙에 폭소하거나 걱정한다. 그래도 취향이라는 게 있는데…. 보통 이런 경우 “편식하지 않는다” “음식 투정 하지 않는다” 정도의 문장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남편은 굳이 저 문장을 써야만 했을까? 편식하지 않는 수준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모양이다. 자신의 메뉴 선택 및 요리 전반에 대해 전적인 수용력을 원했다. 그러니 식탁 앞에서는 차려진 음식 저변에 깔린 의미들을 언제나 유념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밥그릇을 빼앗길 수 있다. 살벌하다.
나도 한 번 밥그릇을 빼앗긴 적이 있다. 나쁜 의도는 없었다. 차려진 식탁을 보는데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식탁 위에는 막 삶은 달걀과 카레덮밥, 수육국밥, 김치볶음밥 그리고 치즈와 상추가 있었다. 뭘 어떻게 먹으라는 건지…. 여기도 저기도 밥 다 밥이네…. 카레덮밥을 잘 비벼서 수육국밥에 말아 먹으라는 건가…. 달걀은 까서 입가심으로? “이 정체불명의 밥상은 뭐야?”
규칙 위반. 질문과 동시에 밥그릇을 빼앗기고 말았다. 감사한 마음으로 공손히 앉아 손 가는 대로 숟가락을 움직였으면 좋을 뻔했다. 하나씩 음미하며 칭찬을 해줬어도 모자랄 판에 심기를 건드리는 질문을 했으니 밥그릇을 뺏겨도 쌌다.
결혼 초엔 나도 요리를 열심히 했다. 매일 같이 장을 보고 아이의 이유식과 새로운 저녁 메뉴를 고민했다. 연어 스테이크를 굽고 꽃게탕을 끓이고 치즈 케이크와 쿠키를 직접 굽기뿐인가 레몬청 담그는 것도 모자라 걸핏하면 박스째 사들인 계절 과일로 잼을 만들었다. 나열하고 보니 눈물겹다. 열심히 한 것치곤 좋은 소릴 못 들었다. 결혼에 대한 내 나름의 낭만이 있었는데, 결혼하면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현실은 좀 달랐다. 음식을 정성스레 준비해준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중 한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이런 걸 누가 먹는다고 해.”
뭐라고? 네 옆에서 내가 이렇게 먹고 있잖아! 아우성치는 속을 겨우 다독여 넘겨야 했다.
이런 말들이 하루하루 쌓여 가던 어느 날 나는 요리를 그만두었다. 아예 주방을 남편에게 넘겨주었다. 그즈음 경제활동을 시작하기도 했고 답답한 남편이 두어 번 나서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남편은 손놀림이 정말 빨랐다. 커다란 손으로 가뿐하게 들어 올린 솥이며 시원하게 치대 쌀을 씻는 솜씨며 보통이 아니었다. 반찬 두세 가지쯤은 금방 만들었다. 그러니 남편 밥을 얻어먹으려면 규칙을 잘 지키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는 대로 먹을 것’이라는 규칙이 못내 냉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5년째 지키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집 규칙 1번을 다른 말로 하면 뭔 줄 알아?”
“뭔데?”
“오마카세.”
오마카세 비싸서 한 번도 못 먹어 봤다고 투덜대지 말란다.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오마카세는 일본어로 타인에게 맡긴다는 뜻이다. 한국어 사전에서는 주방장이 만드는 특선 일본 요리로 풀이하고 있다.
봄이 오면 포항에 내려가곤 했다. 밥상엔 고기반찬은 없어도 열 가지가 넘는 쌈과 봄나물이 상 위에 가득했다. 군침이 돌았다. 엄마가 해주는 집밥. 나는 이제까지 엄마가 주는 대로 먹고 컸다. 아침 7시, 아이는 아빠가 차려준 즐거운 아침을 먹고 학교로 간다. 그런데 나는 나를 위해 잠이라는 ‘오마카세’에 취해 있으니, 누가 나를 깨워줄 것인가. 너무 고급스러운 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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