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케이스 스터디 - SK E&S
SK E&S는 천연가스 중심의 에너지 사업을 넘어 재생에너지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 시장에 진출해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 국내 최초의 직접 PPA를 체결한 데 이어 굴지의 기업들과 연이어 PPA를 체결해 시장을 선도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PPA는 발전사와 전력 소비자(또는 중개자) 간에 체결되는 장기 전력구매계약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수십 년의 장기계약이 이뤄지며 요금을 고정하는 경우가 많다. PPA는 중개자를 거치는 ‘제3자 PPA’, 발전사와 소비자인 기업이 별도의 중개자를 두지 않고 직접 계약하는 ‘직접 PPA’로 구분된다. 그중 SK E&S는 직접 PPA를 중심으로 사업을 한다. 직접 PPA는 거래 당사자들이 제반 여건을 고려해 다양한 조건을 계약에 포함할 수 있어서다.
직접 PPA 공급의 선두주자
PPA는 재생에너지 공급을 순증시키는 개념인 추가성(additionality)이 다른 재생에너지 조달 수단인 공급인증서(REC), 녹색 요금제 등과 비교해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아 선호된다. 기업은 PPA를 통해 장기간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발전사는 해당 기간에 안정적으로 수익을 실현할 수 있다.
SK E&S는 이러한 흐름을 타고 PPA 사업을 확대하며 재생에너지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2022년 12월 기준 총 4.9GW 규모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다. 같은 기간 국내 총재생에너지 발전설비 규모는 22.8GW다. 국내 재생에너지의 5분의 1 이상이 SK E&S를 거쳐 공급되는 셈이다.
2023년에도 BASF, LG이노텍을 포함한 다수 기업과 직접 PPA를 체결해 시장점유율은 더욱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SK E&S는 2025년까지 2GW의 프로젝트를 추가 개발해 총 7GW 규모의 재생에너지 생산·공급·판매에 이르는 재생에너지 파이프라인을 완성, 장기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SK E&S가 재생에너지 사업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면 크게 ‘상품화’, ‘파이낸싱’을 꼽을 수 있다. 지속가능성 전략을 수립하는 단계에서부터 친환경 상품화를 강조해왔다. 2020년 중대성 평가를 통해 ‘친환경 서비스 개발’을 핵심 경영 과제로 선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상품화를 지속가능경영 의제로 설정한 데 이어 그린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기 위해 투자와 ESG를 통합했다. 2021년 3월 이사회 산하 미래전략위원회에서 ESG를 반영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투자 프로세스를 개편했다. 사업 부서가 투자 아이디어를 내면 ESG 체크리스트로 투자 건을 우선 검토하고 투자소위원회, 투자심의위원회를 거쳐 이사회 승인을 받도록 했다.
2022년에는 RE100(재생에너지 100%) 테마를 상품화하기 위해 전담팀인 리뉴에이블전략팀을 신설했다. 직접 PPA를 허용하는 전기사업법이 2021년 4월 개정되고 관련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그해 10월 개정된 직후다. 정부가 공공시장(RPS)을 통한 재생에너지 보급에 한계를 느끼고 시장을 민간에 확대하기 위해 움직이자 이를 포착하고 기민하게 움직인 것이다.
국내 최초·최대 계약 연이어 체결
이러한 노력 덕분에 2022년 3월 아모레퍼시픽과 연간 5MW 규모의 국내 최초 재생에너지 직접 PPA를 체결할 수 있었다. 해당 계약은 RE100 이행을 선언한 국내 기업의 눈길을 끌 만했다. SK E&S의 역량을 고려하면 PPA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것이라고 본 것이다.
SK E&S는 기대에 부응하듯 연이어 PPA를 체결했다. 2022년 7월에는 SK머티리얼즈 자회사인 SK스페셜티와 50MW급 PPA를 맺었다. 충남 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2025년부터 20년간 SK스페셜티 영주공장에 공급하기로 했다. 국내 최초에 이어 최대 규모의 직접 PPA를 체결한 것이다.
2023년 5월에는 화학사인 바스프와 PPA를 체결하는 등 선도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고자 하는 기업의 선택을 받고 있다. 일진그룹 계열사, GC녹십자, LG이노텍과 연이어 PPA를 체결했다. 2023년 11월에는 SK텔레콤, SK실트론, SK머티리얼즈 등 9개 계열사와 재생에너지 직접 PPA를 위한 거래협정서를 체결하며 SK 핵심 계열사에도 재생에너지를 공급하게 됐다.
SK E&S는 재생에너지 생산과 유통, 금융 조달을 모두 묶어 ‘RE100 솔루션’ 상품을 만들었다. 기업은행의 1조9000억원 규모 태양광 펀드, 3000억원 규모 RE100 펀드의 사업을 발굴하고 운영·관리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직접 PPA 사업에 금융을 접목해 발을 달아준 셈이다.
SK E&S는 처음부터 재생에너지 직접 PPA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확대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PPA 관련 법령이 제정되던 당시 시점으로 돌아가면 이러한 판단은 쉽지 않았다. 국내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거나 녹색 프리미엄, 재생에너지 인증서(REC) 구매 등을 선호해서다.
그러나 SK E&S는 향후 경영환경을 고려하면 재생에너지 직접 PPA 시장이 정답이라고 판단했다. 박영욱 SK E&S 리뉴에이블전략팀 팀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전기요금 상승, 배출권 가격 현실화 등 향후 발생 가능한 변수를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 PPA가 RE100 이행과 탄소감축에서 가장 효율적인 이행 수단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한다.
확장의 열쇠 ‘파이낸싱’
실제 직접 PPA는 추가성이 월등해 그린워싱 등 오해의 소지가 없고, 각종 금융상품과 접목해 기업이 유연하게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PPA 기반 글로벌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규모는 2018년 13.6GW에서 2021년 31GW로 큰 폭으로 늘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바스프 등 글로벌 기업이 태양광 또는 풍력 기반 재생에너지를 PPA로 조달하고 있다.
박 팀장은 특히 국내 전력시장에서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이었기에 모든 것이 새롭고 어려웠다고 한다. 그는 첫 사례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기업과 접촉해 기초적 에너지 시장부터 설명하고 표준 계약서를 만들기 위해 수개월간 준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PPA는 장기계약으로 파이낸싱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국내에서는 단 한 차례 사례도 없어 구매자의 신용도를 바탕으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에 그는 장기계약에 따른 금융 조달을 통해 거래할 수 있도록 계약 형태를 구성했다. PPA 거래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계약과 구매 대상, 가격과 기간, 연간 보장 공급량 등을 설정했다. 또 초과 발전 발생 시 발전사업자가 직접 전력시장에 전기를 판매하고 REC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계약 조건을 구성해 최초의 직접 PPA를 체결할 수 있었다.
현재 직접 PPA는 파이낸싱을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 여부와 장기 금리 추세에 따라 계약 가격이 결정된다. SK E&S는 금리 및 유가 상승, 가스 공급 부족으로 인한 에너지 조달 비용 상승 등 각종 변동성에 발 빠르게 대응하면서 시장을 키우고 있다. 현재 여야가 직접 PPA에 망이용 요금 등 부대 비용을 감면해주고 투자 세액공제 제도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만큼 향후 시장성이 개선되면 SK E&S의 직접 PPA 사업은 더욱 탄력받을 것으로 보인다.
박영욱 SK E&S 리뉴에이블전략팀 팀장 인터뷰
“PPA, 가장 효율적인 RE100 이행 수단”
- 2025년까지 7GW 재생에너지 파이프라인 구축은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량(2023년 기준)의 22%에 달하는 꽤 도전적인 목표다.
“7GW 규모의 국내외 파이프라인 구축 목표 중 국내 목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보급 환경을 고려할 때 매우 도전적인 목표인 것은 맞다. 그러나 SK E&S는 체계적 계획과 전략 아래 매년 1GW의 신규 파이프라인 확보라는 목표를 세웠고, 실제 달성해나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5GW 파이프라인 구축 목표를 달성했다. 대표적 사례로 전남 지역에서 0.9GW 규모의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덴마크 재생에너지 투자운용사 CIP와 공동개발하고 있다. 올해도 직접 신규 개발에 나서거나 기존 발전소를 인수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흔들림 없이 사업을 이어갈 것이다. 재생에너지는 SK E&S 그린 포트폴리오의 핵심축으로서 장기 성장의 주요 동력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 초기에 PPA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 배경은.
“기업의 거시 경영환경을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 PPA 시장은 급격한 성장이 가능한 시장으로 판단했다. ESG 공시가 의무화되고 탄소배출을 무역 장벽화하는 글로벌 규제가 현실화되면서 친환경은 기업의 지속적 생존과 성장에 필수 요건이 되는 상황이었다. 더불어, 재생에너지 PPA를 통해 전기를 사용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전기요금 상승, 배출권 가격 현실화 등 향후 발생 가능한 변수를 고려하면 재생에너지 PPA가 RE100 이행 및 탄소감축에서 가장 효율적인 이행 수단이라고 분석했다. 기존 재생에너지 사업과의 연속성 또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SK E&S는 과거부터 LNG 발전사업을 영위하면서 RPS 의무 이행사로서 재생에너지 발전소와 장기계약을 체결해왔다. 이 때문에 재생에너지 PPA도 내부적으로 생소하지 않은 사업 방향이었고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잘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판단했다.”
- PPA 계약 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무엇보다 국내 전력시장에서 누구도 걸어보지 않은 길이었기에 모든 것이 새롭고 어려움이 많았다. 재생에너지에 한해 전기를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사업은 전례가 없고, 계약 기간도 통상 20년 장기로 진행돼 전기를 구매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첫 사례를 만들기 위해 많은 기업과 수없이 연락하고 기초적인 에너지 시장부터 설명해가며 수개월간 표준 계약서를 준비하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재생에너지를 진심으로 필요로 하는 기업과 연결돼 뜻깊은 첫 PPA 프로젝트 성공 사례를 만들 수 있었다.”
- 금융 조달은 어떻게 가능했나.
“금융은 또 다른 어려움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은 대부분 장기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기반으로 개발되기에 금융기관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한 만큼 RPS가 아닌 RE100 PPA라는 새로운 사업방식을 금융기관이 수용할 것인지 검토해야 했는데, 국내에는 사례가 없었다. 먼저 RPS 경험을 바탕으로 금융에서 수용할 수 있는 계약 구조를 최대한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부딪혀보기로 했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영역이라 일단 부딪히지 않고는 알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제공하는 PPA 프로젝트가 사업성이 있다고 인정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 후 몇 번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중순 표준화된 PPA 계약을 기반으로 한 블라인드 펀드를 조성해 사업에 활용하고 있다.”
- PPA 사업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처음 사업을 전개할 때는 구매 기업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해외보다 가격이 비싼 국내 재생에너지 전기를 왜 구매해야 하는지를 설득해 20년이라는 장기계약에 대한 의사결정을 받는 게 쉽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추산한 경제성을 바탕으로 최대한 합리적 계약 조건을 만들어 어려움을 풀고자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오히려 구매하려는 기업은 많은데, 새롭게 개발되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제한적인 상황이다. 한 회사만의 노력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재생에너지 사업은 장기적 관점을 갖고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다. 현재로서는 파이프라인을 꾸준히 개발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국내 태양광 개발은 대부분 개인 또는 영세 개발업체를 통해 소규모로 진행되는데, 이러한 자원을 모아 구매 기업에 매칭해주는 역할도 해나가려 한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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