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 16일 10:5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하나증권이 판매한 펀드 고객이 이 증권사의 투자금 회수 결정으로 전액 손실을 입는 사태가 벌어져 금융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펀드 투자자들은 자금 회수 과정이 일반적이지 않았고 갑작스레 이뤄졌다는 점을 들어 각종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1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금감원 금융투자검사2국은 하나증권의 피닉스다트 인수합병(M&A) 인수금융 회수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피닉스다트는 글로벌 1위 다트회사다. 오케스트라프라이빗에쿼티(이하 오케스트라PE)가 2019년 사모펀드(PEF)를 조성해 이 회사 경영권을 1256억원에 인수했다. 하나증권은 전체 인수금액 가운데 400억원을 회삿돈으로 빌려줬다.
오케스트라PE는 나머지 인수대금을 새마을금고중앙회, 산은캐피탈 등 다양한 곳에서 조달했다. 그 중 한곳이 85억원 규모로 조성된 리딩기업성장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1호 펀드였다. 이 펀드를 판매한 게 하나증권 WM본부였다. WM본부는 글로벌 시장에서 피닉스다트의 점유율과 안정적인 이익 구조를 앞세워 개인투자자 등에게 이 상품을 팔았다.
갑작스런 EOD 선언에 펀드 투자자 전액 손실
지난해 9월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하나증권이 대출 약정서 위반에 따른 기한이익상실(EOD)을 선언한 것이다. 선순위 권리를 가진 하나증권은 오케스트라PE가 보유한 피닉스다트 경영권 지분 전량(86%)을 담보로 쥐고 있었다. EOD 선언과 함께 피닉스다트 경영권 지분 처분에 나선 것이다. 하나증권의 EOD 선언 일주일만에 피닉스다트 경영권은 매각됐다. 처분 금액은 338억원으로 5년 전 오케스트라PE가 인수했을 당시 가격(1256억원)보다 73% 급락한 가격이었다. 하나증권은 인수금융 400억원 가운데 100억원은 이미 회수해 300억원만 남은 상태였다. 담보물을 338억원에 팔아 원금과 이자를 모두 회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증권보다 대출 순위가 뒤져있던 다른 출자자(LP)들은 모두 손실을 봐야했다. 새마을금고중앙회를 비롯해 DGB캐피탈, 산은캐피탈 등 금융사 10여곳은 595억원을 모두 날려야 했다. 또 다른 중순위(100억원), 후순위(70억원) 투자자도 마찬가지였다. 먼산만 바라봐야 했다.
하나증권 WM본부에서 판매한 리딩기업성장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1호는 중순위 투자자였다. 펀드 투자자들은 이 같은 펀드 손실 소식을 올해 2월에야 접했다. 펀드에 가입한 한 투자자는 "안전하다고 해서 가입했는데 판매 증권사의 석연치 않은 회수 과정으로 은퇴자금 수억원이 날라갔다"고 토로했다.
EOD 원인 제공자가 회사 경영권 재인수
하나증권의 피닉스다트 인수금융 회수 과정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IB 전문가 얘기다. 대주단이 EOD를 통보하고 담보 지분을 일방 처분하는 일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EOD를 선언한 사유도 일반적이지 않고, EOD 선언과 함께 전광석화처럼 회사 경영권을 넘겼다는 점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고 펀드 투자자들은 의혹을 제기한다. 하나증권은 외부 기업가치 평가를 거치지 않고 매각가격을 산정하고, EOD를 선언한 뒤 일주일 만에 경영권을 팔아버렸다. 잔금이 지급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매수자에게 주권을 교부하기도 했다. 피닉스다트 경영권을 가져간 인물은 EOD 사유를 발생시킨 장본인이다. 5년 전 오케스트라PE에 회사를 팔고 나간 창업자다.
통상 EOD는 대출 원금이나 이자 등을 못 갚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이번 건은 달랐다. 피닉스다트는 2021년 창업주 개인회사에 발행한 130억원 규모의 전환상환우선주(RCPS)을 발행했는데 작년 RCPS 상환권이 행사되자 하나증권은 이를 EOD 사유라고 판단했다. 대출계약서에서 금지한 '불균등 출자환급'에 해당된다는 점에서였다. 대출계약에서 이 출자환급에 대해 '이익배당, 상환주식의 상환, 자본의 감소, 이익소각, 자기주식 취득 등을 의미한다'고 명시했다.
출자환급 금지는 통상적으로 인수금융 계약서에 EOD 사유로 명시되는 조항이지만 실제 발동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더욱이 대주단의 사전동의 없이 벌어진 출자환급은 사례를 찾기 힘들다는 게 법조계 설명이다. 상환 신청 직전 피닉스다트는 이익을 내고 있었다. 2022년 피닉스다트는 매출 267억원, 영업이익 17억원을 거뒀다.
이런 EOD 약정 위반은 오케스트라PE 내부 분쟁 과정에서 벌어졌다. 애초 피닉스다트의 RCPS 발행 자체가 오케스트라PE의 뜻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피닉스다트는 오케스트라PE 소속 A이사가 대표직을 맡았는데 회사 경영을 두고 오케스트라PE 경영진들과 갈등을 겪어왔다. EOD의 원인이 됐던 창업자 측에 RCPS를 발행한 것도 A이사의 단독 소행이었다고 오케스트라PE는 주장하며 담보 처분을 되돌리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지난 2월 "하나증권의 담보물 매각 과정은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판결을 내렸다.
하나증권은 "피닉스다트의 기업가치 하락 우려와 위탁운용사(GP)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며 "담보권 행사 과정과 매각 가격에도 문제가 없지만 고객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피닉스다트 대표였던 A 이사는 "오케스트라PE는 대출계약서상 20영업일이나 치유기간이 주어진 상태였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대주단의 신뢰를 상실했다"면서 "EOD 통보를 받자 오히려 하나증권을 상대로 대주단의 핵심 담보권이었던 주식 의결권 위임을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했다. 또한 하나증권과 협의 없이 피닉스다트의 일본 사업권만을 헐값에 매각하려는 시도도 발각되면서 어쩔 수 없이 담보가 처분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피닉스다트를 둘러싼 이해상충 논란이 공정금융 범죄에 해당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금융은 금감원이 2024년 검사업무 운영계획에서 밝힌 첫 번째 중점 점검 사안이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