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 세계에서 744만 대를 판 현대자동차그룹의 주요 시장별 판매 실적이다. 저 멀리 미국과 유럽에선 쌩쌩 달리고 있지만 바로 옆 아시아에선 맥을 못 추는 모양새다. 중국과 일본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 천하’인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도전자는 현대차가 아니라 중국 비야디(BYD)다. 시장 상황이 만만치 않다고 내버려 두기엔 아시아의 인구 규모와 성장 가능성이 너무 크다. 현대차그룹이 아시아 시장 공략에 다시 고삐를 죄기로 한 이유다.
○소형차로 일본 시장 재도전
현대차는 꽁꽁 닫힌 일본 문을 열기 위한 열쇠로 캐스퍼 전기차를 택했다. 올 하반기 국내 판매에 들어갈 이 차량을 내년 초 일본에 선보이기로 했다. 캐스퍼를 점찍은 이유는 지난해 일본 베스트셀링 카 리스트를 보면 알 수 있다. 톱5 중 세 개(1위 도요타 야리스, 4위 닛산 노트, 5위 도요타 루미)가 경차였기 때문이다.
길이 3.6m, 폭 1.6m인 캐스퍼는 일본 경차 기준(3.4m, 1.48m)보다는 조금 크지만 소형차를 선호하는 일본인의 입맛에 가장 맞는 현대차그룹 차종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에서 판매하고 있는 아이오닉 5는 상품성이 있지만 통상적인 일본 주택의 차고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며 “캐스퍼는 크기는 물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측면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신차 투입과 함께 일본 판매 전략을 보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현행 온라인 판매 방식이 대면 접촉이 일상화된 일본 문화와 맞지 않아 고객들이 차를 직접 보고 운전하며 정비까지 가능한 복합거점을 오사카 등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설명이다. 현재 일본의 현대차 복합거점은 도쿄 인근 요코하마 한 곳에만 있다.
○인도 고급차·태국 전기차로 공략
현대차그룹은 인도 시장 공략법을 투트랙으로 나누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잘하고 있는 중저가 시장 공략은 한층 더 강화하면서 고급 시장에도 뛰어드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i10, i20, 크레타 등 소형 차종을 앞세워 인도에서 60만 대 넘게 팔았다.여기에 제네시스를 투입해 현지 고소득층까지 잡겠다는 게 현대차의 구상이다. 중국을 제치고 지난해 세계 1위 인구대국이 된 인도는 최근 3년 연속 7% 넘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기록하며 고소득층이 늘고 중산층이 두터워졌다. 이 덕분에 인도 자동차시장(485만 대)은 지난해 일본을 넘어 중국 미국 유럽과 함께 세계 4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기아는 동남아 ‘전기차 허브’로 도약 중인 태국에 연산 25만 대 규모의 전기차 공장을 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해 동남아 호주 뉴질랜드를 통틀어 38만 대에 그친 아시아·태평양 지역 판매를 늘린다는 구상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본격화된 2017년부터 꺾인 중국 시장에선 현지에서 인기가 있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로 대응할 방침이다. 지난해 현대차·기아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1.4%로 역대 최저였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중국에서 유의미한 점유율을 회복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