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기관투자가들로부터 매일 밤 전화를 받습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가 생각보다 상당해요.” (목대균 KCGI자산운용 대표)
“한국 증시가 일본처럼 레벨업 할 거라 보는거죠.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는 일단 사두자는 분위기입니다.” (이세철 씨티글로벌마켓증권 리서치센터장)
외국인 투자자의 사상 최대 매수세 속에 14일 코스피지수가 2700선을 돌파하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 증시에 대한 ‘학습효과’와 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가 외국인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국내 기관까지 ‘사자’에 가세하면서 코스피지수는 당분간 랠리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밸류업 프로그램 세일즈 나선 정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올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12조2044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1998년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뒤 사상 최대 규모다.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는 뜻밖이란 평가가 많다. 올해초만해도 한국 증시엔 비관론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5년 만에 일본에 뒤졌고, 기업의 실적전망은 계속해서 낮아졌다. 지난 1월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기술주가 랠리가 펼쳐졌지만 한국 증시만 소외되기도 했다.
반전의 계기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었다. 지난 1월17일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토론회에서 운을 뗀 뒤, 금융당국의 세부안은 급물살을 탔다. 이는 지난해 일본 도쿄증권거래소(JPX)의 상장사 저평가 개선 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일본 닛케이225 지수는 1989년 거품경제 시절을 넘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한 헤지펀드 운용사 대표는 “과거 일본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을 때 많은 외국인들이 의심하다가 투자기회를 놓쳤다”며 “한국 시장에선 먼저 올라타겠다고 작정하고 들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펀드매니저들이 한국 정부의 증시부양 정책에 큰 관심을 보였다”며 “이들이 자신이 몸담은 외국계 기관을 설득해 한국 증시로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정부도 ‘밸류업 세일즈’에 나서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최근 씨티글로벌마켓증권 주관으로 열린 한국시장 관련 기업설명회(IR)에 참석한 기획재정부 고위급 관료는 “밸류업 프로그램 등 정부의 증시 활성화 노력은 일회성이 아니고 장기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관자금 가세, 코스피 3000 뚫나
실제 외국인은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이 낮은 저평가 종목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 정보기술(IT) 종목만 편식하던 과거와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올해 가장 많이 사들인 10개 종목 중 현대자동차(PBR 0.73배), 삼성물산(0.86배), KB금융(0.64배), 우리금융지주(0.37배), 삼성생명(0.81배) 등 절반이 PBR 1배 이하였다.
반도체 업황 개선에 대한 기대도 한국 증시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불고 있는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성장 기대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증가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세계 HBM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고 있다. 외국인은 올들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각각 2조931억원, 1조1243억원어치 순매수했다.
한동안 국내 증시를 외면하던 기관 자금이 매수세에 가세하면서 코스피지수가 3000선을 돌파할 것이란 기대도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은 이날 2732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일간 기준으론 2년3개월만에 최대치다.
강대권 라이프자산운용 대표는 “거래소가 밸류업 프로그램 관련 지수를 조만간 발표하고 이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나오면 기관 자금이 쏟아져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최만수/김익환 기자 bebop@hanky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