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생인 A씨는 아내 B씨와 젊은시절부터 음식점을 운영해 크게 성공했습니다. 둘 사이에는 아들 C와 딸 D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10여년 전 아내 B씨는 위암으로 사망을 하게 됐습니다. 아내와 사별한 후 혼자 살던 A씨는 다니던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X녀를 소개받았습니다. X녀는 1978년생으로 이혼녀였습니다. 그녀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 Y를 양육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22살의 나이 차이가 났지만 급격히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서로 장래를 약속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X녀가 재혼을 서두르기를 원했습니다.
A씨가 X녀와 재혼을 하겠다고 하자 아들 C와 딸 D는 걱정이 커졌습니다. 아버지가 혹시라도 이혼을 하게 되면 돌아가신 어머니와 함께 모은 재산을 X녀에게 분할해주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설사 이혼을 하지 않더라도 A씨가 사망하게 되면 X녀가 배우자로서 A씨의 재산에서 상당한 지분(3/7)을 상속받게 된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A씨도 자식들의 걱정이 충분히 이해가 됐습니다. 이를 해결하고 마음 편하게 재혼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A씨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많은 재산을 모은 자산가가 전처와 이혼 내지 사별한 후 늦은 나이에 재혼을 할 때에는 자녀와의 갈등이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생을 고생해서 모은 재산이 재혼한 새로운 배우자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재혼을 하기 전에 미리 재산관계를 정리해두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문제가 생기는 국면은 크게 두 가지 경우입니다. 첫째는 재혼한 아내와도 이혼을 하게 되어 재산분할 문제가 생기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재혼한 아내와 전처 소생 자녀들 간에 상속분쟁이 생기는 경우입니다.
부부의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지고 있던 고유재산은 그의 특유재산으로서 이혼할 때 원칙적으로 재산분할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특유재산이라 하더라도 상대 배우자가 그 재산의 유지 및 가치증가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재산분할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혼인기간이 길어질수록 특유재산이라도 그 재산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상대 배우자의 기여가 있다고 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렇다면 미국처럼 혼전계약서(prenuptial agreement)를 작성하는 것은 어떨까요? 한국에도 부부가 혼인 전에 미리 부부재산에 관한 계약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부부재산약정이라 합니다(민법 제829조). 대체로 재산의 소유관계(재산을 누구의 소유로 하는가), 관리관계(재산관리를 누가 하는가), 책임관계(채무를 누가 책임지는가), 청산관계(이혼시 부부의 재산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등이 그 주된 내용이 됩니다.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청산관계입니다. 즉 이혼시에 부부의 재산관계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를 미리 정해두는 것입니다.
부부재산약정으로 이혼시 재산분할 문제를 미리 정할 수 있는지에 관해 과거에는 부정하는 견해가 많았지만(부부재산약정은 혼인 중에만 효력이 있다는 이유로), 최근에는 이를 인정하는 견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 민법은 부부재산약정의 내용에 대해 어떠한 제한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계약의 내용이 반사회적이거나 심히 불공정하지만 않으면 부부재산에 관한 어떠한 내용의 계약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외국의 입법례를 보더라도 혼전계약을 체결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혼시 재산분할문제를 사전에 정해두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볼 때, 한국의 경우에도 부부재산계약으로 이혼시 재산분할문제를 미리 정해 둘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러한 약정이 가정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재산분할청구권 자체를 포기하는 식의 약정은 허용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A씨는 X녀와 재혼을 하기 전에 부부재산약정을 함으로써 재혼 전에 A씨가 소유하고 있던 재산은 설사 이혼을 하더라도 재산분할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해둘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상속계약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부부재산약정으로 배우자의 상속분을 미리 지정해둘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부부재산약정으로 상속관계를 규율할 수 없고 상속을 대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결국 사망을 하게 되면 배우자가 가지고 있던 재산은 모두 상속재산이 되어 법정상속분에 따라 배우자에게 상속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 재혼 전에 재산을 자녀들에게 미리 증여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더라도 배우자의 유류분반환청구를 막기는 어렵습니다. 즉 유언이나 증여로부터 배제된 상속인은 자신의 법정상속분의 절반에 대한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이것을 유류분권이라 합니다.
한편 유언대용신탁(Living Trust)에 맡겨둔 재산은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유류분반환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하급심 판결(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법원 판결이 아니기 때문에 이 판결만을 근거로 재혼한 배우자의 유류분청구를 막을 수 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생전증여나 유언을 통해 재혼 배우자의 상속을 어느 정도 제한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유류분까지 완전히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건 A씨와 X녀가 진실한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로서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상훈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