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주 회사들이 시장점유율 하락과 실적 감소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주 시장 성장이 정체된 가운데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 등 대형 주류 기업들이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서도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남 대표 소주 보해, 4년 만에 적자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광주·전남을 거점으로 한 보해양조는 지난해 매출 930억원, 영업손실 28억원을 냈다. 전년 대비 매출은 2.4% 늘었지만, 영업손익은 2019년(-154억원) 후 4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보해양조 측은 적자 전환 이유에 대해 “주정 등 원재료값 상승 여파로 수익성이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류업계에선 수년째 광주·전남 지역 점유율이 하락한 것을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한다.
‘잎새주’를 앞세워 2000년대 초반까지 90% 수준을 유지했던 보해양조의 광주·전남 지역 점유율은 현재 30%대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기준으로 전국 점유율(소매점 매출 기준·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집계)은 3%에도 미치지 못한다.
부산·경남 지역 소주 회사인 무학도 사정이 비슷하다. 점유율과 실적이 동반 하락세다. 작년 매출은 1466억원으로 전년보다 4% 넘게 줄었다. 2010년대 중반 ‘좋은데이’로 저도주 소주 열풍을 확산시킨 무학은 한때 전국 점유율이 10%대 중반까지 치솟았으나 지금은 반토막 났다. 대구·경북 지역을 기반으로 한 금복주 역시 지난해 전국 소매점 매출이 1000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대선주조와 부산·경남 지역 소주 시장을 양분했던 무학은 2013년께 본격적으로 수도권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하지만 대형 주류업체의 아성에 밀려 성공하지 못했다. 수도권 진출을 위해 대대적인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은 게 오히려 실적에 악영향을 줬다. 2019년엔 1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진로는 부산 점유율 30% 넘겨
지방 소주 업체는 거점 지역에서도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에 밀리며 고전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부산·경남을 제외한 모든 광역시·도에서 50%가 넘는 시장 점유율로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무학과 대선주조가 장악하다시피 한 부산·경남에서도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하이트진로는 2018년까지만 해도 저도주 소주의 출발지로 꼽히는 부산에서 점유율이 10%대 초반, 경남에선 20%대 초중반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2019년 4월 출시한 ‘진로’가 젊은 층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최근 부산 점유율이 30%대 초반까지 올랐다. 경남 점유율은 40%가 넘는다.
‘제로(0) 슈거’ 트렌드에 맞춰 보해양조, 무학 등이 차례로 제로 소주를 내놨지만, 아직까지 시장 판세를 뒤집지는 못하고 있다. 지방 소주 회사 관계자는 “지방 업체들은 연구개발 투자를 소홀히 한 채 연예인 모델을 기용하는 등 광고에만 열을 올렸다”며 “이 같은 전략이 부메랑이 돼 실적 악화로 돌아오고 있다”고 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