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소멸 위기에 빠진 지방도시들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현금성 지원을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금 지원 정책이 지방도시 간 뺏고 빼앗기는 ‘인구 제로섬 게임’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0일 보건복지부 의뢰로 육아정책연구소가 발간한 ‘2023 지방자치단체 출산지원 정책 사례집’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출산지원 관련 예산은 1조1443억원으로 2022년 1조26억원 대비 1417억원(14.1%) 증가했다.
출산 지원 정책의 대다수는 현금 지원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지자체들의 현금 지원 규모는 총 7868억5400만원으로 전년(6576억9200만원)보다 1291억6200만원(19.6%) 늘었다. 첫만남 이용권, 아동수당, 부모급여 등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저출산 대책을 제외한 금액이다. 이런 현금 지원이 전체 출산 지원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8.8%로 바우처(9.3%) 서비스(6.6%) 인프라(5.8%) 등보다 월등히 높았다.
지자체 간 출산 지원 경쟁은 가열되고 있다. 5만 명이 거주하는 경북 의성군은 올해부터 전입지원금을 20만원으로 두 배 인상했다. 다른 지역에서 1년 이상 살던 전입자는 3개월 이상 의성군에서 거주해야만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었는데, 지난달부터는 전입신고와 동시에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조건을 완화했다. 의성군에서 멀지 않은 청송군은 올해 아이 돌사진 촬영비로 최대 50만원, 중·고교 신입생 교복 구입비로 최대 30만원을 지급한다. 경북 영덕군은 100만원인 결혼장려금을 증액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인구가 상대적으로 더 적은 기초지자체는 현금 지원에 더 적극적인 것으로 분석됐다.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기초지자체의 출산지원금 예산은 2348억600만원으로 전년보다 22.9% 증가했다. 기초지자체 중 지난해 가장 많은 1인당 출산지원금을 준 곳은 전남 강진군으로 지원금액이 최대 5040만원에 달했다. 장인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발간한 지자체 저출산 대응 관련 보고서에서 “젊은 층 인구 유출이 심각한 인구위기지역은 상대적으로 출산지원금 규모가 크다”며 “출산지원금을 인구 유입을 위한 필사적인 정책 수단으로 활용할 개연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현금성 출산 지원 정책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 말부터 2020년 말까지 20년간 전국 인구는 470만 명 증가했는데 이 중 400만 명(85.1%)이 수도권에서 늘었다. 비수도권에선 인구가 줄고 출산율이 하락하는 현상이 지속됐다.
이상림 보건사회연구원 인구평가모니터링센터장은 “지자체들의 현금성 출산 지원 경쟁은 지방도시 간 인구 뺏기 경쟁 양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활력을 높여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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