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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값도 아껴야죠"…브랜드 안 따지고 산다 [오정민의 유통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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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맞벌이 부부 박모씨는 지난해부터 장을 볼 때 유통업체 자체브랜드(PB) 제품과 간편식(HMR) 위주로 장바구니에 담고 있다. 전방위적으로 식품 물가가 오르면서 식비 부담이 커진 만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A씨는 "과일과 채솟값이 치솟은 데다 가공식품값도 올라 장을 한번 보면 10만원이 훌쩍 넘는다"며 "라면과 우유 등 먹거리와 물티슈 등 생활용품은 저렴한 PB상품 위주로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와 같이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선 소비자가 늘면서 지난해 소비 위축 속에서도 국내 PB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고물가 시대 불황형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내세운 PB 제품이 인기를 끈 결과다. PB는 유통업체가 제조업체와 협력해 기획·생산하는 제품이다. 유통사 브랜드를 달고 시판되는 만큼 마케팅비 등을 절감해 불황기 각광을 받는 제품으로 꼽힌다.
작년 PB 시장 11.8% 증가…식품 성장 두드러져
20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닐슨아이큐(NIQ)가 2022년 4분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1년간 오프라인 소매점 약 6500곳의 매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국내 PB 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11.8% 성장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재 시장 매출 증가율이 1.9%에 그친 점을 고려하면 약 6배 높은 수준이다.

소비자들은 지난해 특히 식품 부문의 PB 구입을 늘린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PB 시장 증가율은 비식품(전년 대비 증가율 7.4%)보다 식품(12.4%) 부문에서 두드러졌다.

국내 소비재시장(지난해 3분기 말 기준)에서 PB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로 집계됐다. 부문별로는 식품과 비식품이 각각 3.9%, 4.6%였다.

소비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소비자들이 필요하지 않은 비식품 지출은 줄이고 음식료품 등 필수재 위주의 소비활동은 유지하되, 저렴한 상품을 찾은 결과라는 게 대한상의의 분석이다.

대한상의는 "지난해 소비자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가격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이 품질 대비 저렴한 PB 상품 구입량을 늘렸다"며 "식품 부문이 전체 PB시장 성장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간편식 대형마트·편의점 모두 PB가 NB 이겼다"
지난해 식품 PB 중 카테고리별로 라면과 간편식 등 편의가공식품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특히 주요 유통채널에서 간편식 PB 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PB 간편식이 일반제조사브랜드(NB) 제품 매출을 제친 것으로 나타났다.

NIQ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식품 카테고리별로 편의가공 시장 성장률이 19.1%로 가장 높았고, 제과(16.6%), 신선가공(13.6%), 커피·차(13.2%), 음료(10.6%), 유가공(8.9%) 등이 뒤를 이었다.

편의가공 식품 중에서도 대용량 컵라면 판매 호조 등에 힘입어 라면 카테고리가 32.3% 고성장했다. 유통사들이 구색을 강화한 즉석 국·탕·찌개류 카테고리도 25.2% 증가했다.

특히 대형마트·기업형 슈퍼마켓(SSM)·편의점에서 판매된 즉석 국·탕·찌개 매출에서 PB가 NB 매출을 웃돌았다. 일례로 즉석국 제품은 구색 수가 적은 편의점의 경우 PB 제품 매출 비중이 82.2%에 달했다. 대형마트(69.1%)와 SSM(51.9%)에서도 매출 절반 이상을 PB가 채웠다.
대형마트서 PB 비중 가장 높아…노브랜드 작년 매출 1조4000억 육박
주요 유통채널 중 전체 매출에서 PB 비중이 가장 큰 오프라인 업태는 대형마트로 8.7%였다. 이어 SSM(5.3%), 편의점(4.1%) 순이었다.

실제 이마트가 2015년 선보인 초저가 PB 콘셉트인 '노브랜드'는 지난해 1조40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이마트에 따르면 노브랜드의 지난해 매출은 약 1조3800억원으로 전년보다 9% 성장했다. 대표 제품인 감자칩 등 과자 매출(증가율 19.8%)이 20% 가까이 뛰었고, 라면 역시 19.2% 늘었다. 유가공품(14.1%)와 생활용품(11%) 매출증가율도 두 자릿수로 집계됐다.

또다른 대형마트 홈플러스가 2019년 11월 첫선을 보인 PB '홈플러스 시그니처'의 지난해 매출은 2019년보다 200%대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히트제품으로 꼽히는 ‘이춘삼 짜장라면(4입)’과 ‘이해봉 짬뽕라면(4입)’은 봉지로 환산하면 총 1100만봉 이상 판매됐다.

업태별 PB 매출 증가율은 편의점이 19.3%로 가장 높았다. 고물가에 대형마트도 10.3%로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고, SSM은 5.7%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유통업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경쟁이 한층 심화하며 PB 시장의 성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의 체감 경기가 단기에 급격한 개선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비자들이 앞으로의 한층 가격 경쟁력을 따지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유통업계의 전쟁은 가성비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장근무 대한상의 유통물류진흥원장은 "유럽의 경우 경제 저성장기에 실속소비 패턴이 정착하면서 PB 시장이 크게 성장했는데 한국도 최근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글로벌 유통업계 평균 PB 점유율이 21%인 점을 고려하면 국내 시장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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