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퀴리(퀴리 부인)는 노벨과학상(화학·물리)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다. 그는 업적을 인정받아 사망 후 한국의 국립현충원에 해당하는 프랑스 파리 판테온에 안치됐다. 그의 관은 3㎝ 두께 납으로 차폐돼 있다. 사망 9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신에서 방사선이 방출되고 있어서다.
조민수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 비상진료정책부장(사진)은 19일 “퀴리 부인은 자신이 방사선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방사선은 인간의 오감으로 감지할 수 없어 사전 교육이 유일한 대비 방법”이라고 말했다.
조 부장이 교육을 강조한 건 방사선 사고가 늘고 있어서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의 방사선안전관리통합정보망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9년 2월~2024년 1월) 방사선 안전사고는 149건 보고돼 직전 5년(2014년 2월~2019년 1월)의 74건에 비해 101% 증가했다.
해법을 모색하던 조 부장은 확장현실(XR)에서 답을 찾았다. 애플의 비전프로 등 XR 관련 제품 보급이 늘면서 방사선 교육에도 어렵지 않게 접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상센터가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4년간 22억2040만원을 지원받아 세계 최초로 방사선 비상진료 XR 콘텐츠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비상센터는 방사선 비상진료를 총괄하는 조직으로, 대응 인력 양성 교육을 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 전국 31개 기관에서 900여 명의 요원이 활동 중이다.
조 부장은 “방사선 사고가 나면 의사라고 해도 교육 미비 시 우왕좌왕하게 된다”며 “교육에 XR을 접목하면서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방사능 재난 대비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강조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원자력 선진국에서도 XR 시스템은 전무하다.
콘텐츠는 △중증도 분류 △피폭 환자 처치 △계측장비 활용 △방사선 사고 대비 병원 결정 △다각도 영상(피폭 환자 대응 절차) 등 8종으로 구성됐다. 기자가 체험해본 XR 콘텐츠는 기대 이상이었다. VR 기기 착용 후 핸들 패드를 손에 쥐자 눈앞에 급박한 상황이 펼쳐졌다. 가상의 회사에서 방사성동위원소가 내장된 기기가 폭발한 상황을 가정했다. 피폭자가 발생한 시나리오가 진행돼 아수라장이 구현됐다. 기자는 의료진 역할을 맡아 오염 확산 방지, 방호복 및 개인선량계 착용, 의료적 판단을 통한 제염·처치, 대응 인력의 피폭 여부 확인과 현장 정리 등 전 과정을 수행했다.
XR 교육은 지난해부터 일곱 차례 시범 운영됐다. 교육 후 교육생 15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성취감을 느꼈다’ 문항에 대해 ‘매우 그렇다’는 응답이 47%(71명), ‘XR을 활용한 교육이 확대되길 원한다’ 문항에 ‘매우 그렇다’는 응답이 64%(111명)에 달하는 등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 부장은 “최적화 작업을 거쳐 오는 10월 최종 버전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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