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는 1776년 <국부론>을 펴냈다. 10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다. 시시콜콜 여러 이야기를 써놨기에 학자마다 해석이 다르다. 시장에 맡기는 게 최고라는 사람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사람들 모두 <국부론>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스미스가 17년 전인 1759년 펴낸 <도덕감정론>까지 곁들이면 해석의 다양성은 더 커진다.
‘애덤 스미스와 한국 경제’라는 부제가 붙은 <자유의 길>은 스미스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민경국 강원대 명예교수, 안재욱 경희대 명예교수, 김성준 경북대 교수, 홍승헌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 임일섭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공저자로 참여했다. 지난해 ‘애덤 스미스 탄생 300년’을 맞아 한국자유주의학회가 연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논문을 책으로 엮었다.
스미스가 살았던 18세기 전후 수많은 사상가가 등장했다. 토머스 홉스, 장 자크 루소, 존 로크 등이다. 홉스는 개인의 이익 추구가 서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몰아넣는다고 했다.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는 인간의 생명, 재산, 자유라는 자기 이익 추구가 불확실하고 불편하다고 했다.
반면 스미스는 자기 이익 추구가 꼭 타인과의 충돌과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여기서 그 유명한 <국부론> 속 문장이 나온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하는 것은 정육점이나 양조장 주인, 제빵업자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고 헤아려보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에 빵을 먹고자 하는 나의 이익은 빵을 팔아 이익을 얻으려는 제빵업자의 자기 이익 실현이 있기에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타인의 이익 추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이익 추구 행위 또한 인정받을 수 없다.
스미스의 자기 이익 추구(self-interest)를 흔히 이기심으로 바꿔 말하는데, 사전적 의미인 ‘자기 이익만을 꾀하는 마음’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래서 ‘자애심’ 혹은 ‘자기애’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스미스는 정육점 주인이나 제빵업자나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고 봤다. 이렇게 사람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때 사회가 번영한다는 게 스미스 사상의 핵심이다.
‘탐욕은 좋은 것’이란 말도 스미스와 거리가 멀다. 스미스와 자주 엮이는 인물이 버나드 맨더빌이다. 그는 1714년 <꿀벌의 우화>란 책을 썼다. 이기심, 사치, 탐욕 등 개인의 악덕이 사회에 이롭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주장을 폈다고 오해받지만, 오히려 스미스는 맨더빌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성준 교수는 “스미스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은 그의 자유주의 사상을 아무런 도덕적·윤리적 개념도 없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 멋대로 행동하는 개인을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한다”며 “도덕에 대한 인식과 감정이 없다면 시장은 올바르게 작동할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스미스가 정부의 역할을 국방, 재산권 보호, 공공시설 건설, 교육 등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본 것도 이해가 된다. 시장 참여자들이 도덕심 등을 통해 알아서 규칙을 잘 지킨다면 굳이 정부가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사회주의가 부모의 보살핌을 받았던 어린 시절의 향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자유주의는 책임감 있는 다 큰 어른들의 세계를 상정한다. 물론 자유주의의 이상과 현실은 큰 차이가 있다.
정부 역할에 대해선 이 책의 저자들도 조금씩 의견을 달리한다. 민경국 교수는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자생적 질서’에 빗댄다. 그는 “스미스는 익명의 거대사회에서 우리가 의지할 것은 정부가 아니라 시장의 낯선 사람들의 상호작용에서 의도치 않게 형성되는 결과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해석했다.
안재욱 교수는 스미스의 ‘자유 경쟁’을 강조한다. 주류 경제학의 완전 경쟁은 기업의 수를 중요하게 보지만, 자유 경쟁은 정부의 보호나 특혜 여부를 따진다고 설명한다. 안 교수는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유 경쟁이라며 정부의 독과점 규제를 비판한다.
김성준 교수는 “스미스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전적으로 맡기면 시장이 모든 경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며 “그는 소위 자유방임주의자가 아니었고 무정부주의자는 더더욱 아니었다”고 했다.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국부론> 출간 200주년인 1976년 “스미스의 연구는 국부론 출간 100년을 맞은 1876년보다 오늘날의 현실에 더 시의적절하다”고 했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