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두 달째를 맞은 조희대 대법원장(사진)이 “재판 지연을 해결하기 위해선 법관 정원을 늘리는 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재판 지연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으면서 “사법부가 현재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부족한 법관 중 육아휴직과 해외연수 등 비가동인원이 220명 정도 된다”며 “장기적으로 재판 지연에 대처하기 위해선 법관 증원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관 증원 내용을 담은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 개정안이 21대 국회 회기 안에 통과되지 않으면 기획재정부와 이 문제를 두고 다시 처음부터 협상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법무부는 2022년 말 판사 정원을 2027년까지 370명 늘리는 판사 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2년째 국회에 묶여있다. 그 사이 재판 지연현상을 더욱 심화하고 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1심 민사 합의사건의 판결이 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2017년 평균 294일에서 2022년 420일로 길어졌다.
조 대법원장은 점점 형태가 복잡해지는 기술침해 사건을 제대로 판단하려면 법원의 전문성도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엔 “독일의 참심제처럼 기술분야 전문가들이 직접 결론에 관여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연구할 필요는 있다”며 “헌법상 허용된다면 기술 전문가들이 가능한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경력법관 자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조 대법원장은 “벨기에처럼 배석판사 자격은 경력 3년 이상이면 적당하고, 나머지는 국회에서 논의 중인대로 7년→10년→15년으로 단계적으로 변화를 주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현재 5년 이상인 법관 지원 자격은 2025년부터는 7년 이상, 2029년부터는 10년 이상으로 바뀐다.
조 대법원장은 일선 법관들이 투표로 법원장 후보를 정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올해 시행하지 않은 것을 두고는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 각국의 입법 사례를 조사했던 검토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법원 구성원이 법원장을 추천하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었다”면서 “하반기에 이 문제와 관련해 법원의 모든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대형 로펌과 리걸테크 등 민간분야에서 요구하는 판결문 공개에 대해선 검토해보겠다는 의향을 보였다. 조 대법원장은 “대한변호사협회에서도 최근 (공개) 요청이 들어왔는데 변협, 언론 등과 함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서 판결문 공개를 입법화하자고 답했다”며 “법관들이 판결 공개를 통해 자부심을 느끼고 국민들의 알권리도 보장하면 좋겠다”고 했다. 다만 “판결문에 등장하는 당사자들을 익명 처리하는 데 드는 예산과 인력 문제, 비실명화 작업을 맡은 사람이 나중에 문제가 됐을 때 책임져야한다는 부담 등을 해결하고 가야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조 대법원장은 인사청문회 때부터 도입 의지를 드러냈던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제에 대해선 “여러가지 방안을 만들고 검토한 상태로 현재 세부적인 내용을 연구하고 있다”며 “대법원 규칙으로 할지 국회 입법으로 할지를 두고도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달 새 대법관 두 명이 합류하면 곧바로 논의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은 판사가 영장을 발부하기 전에 관련자를 불러서 대면 심문을 할 수 있는 제도다.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2월 이 같은 심문이 가능한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허란/김진성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