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의 화학적 결합을 단행한 초유의 신당이 탄생한 가운데, 이준석 개혁신당 공동대표의 핵심 지지층으로 분류되는 2030 남성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정치 행보에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합리적 보수를 표방해온 이 대표에게 열광했지만, 그의 최근 행보에서 '보수의 정체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개혁신당·새로운미래·새로운선택·원칙과상식 등 제3지대 4개 세력이 빅텐트를 펼친 지난 9일, 개혁신당 홈페이지에는 당원들의 불만이 빗발쳤다. 당원 A씨는 "개혁보수라는 말 집어치우고 그냥 진보 잡탕이라고 하길 바란다"며 "오늘 사진 보라. 개혁보수의 상징성이 어디에 있나. 정말 최악"이라고 했다. 이 밖에도 홈페이지에는 탈당을 요구하는 게시물들이 100개 이상 올라왔다.
2030 남성이 주로 이용하며 이 대표의 온라인 핵심 지지 기반으로 평가돼왔던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서도 이 대표에게 실망했다는 반응이 속출하고 있다. '빅텐트 할 거면 진짜 왜 나온 거지?'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보면 한 네티즌은 "소신 지켜가며 불합리와 싸운 끝에 개혁보수를 내걸고 탈당한 건데, 상황이 여의찮다고 진보 진영과 빅텐트? 그럴 거면 국민의힘에서 숙였어야지, 왜 진보 진영에 굽히는 거냐"고 했다. 이 글에는 "국민의힘에서 싸우고 진보에 고개 숙인 자칭 보수정치인", "내부 총질 현실화" 등의 반응과 함께 200개에 가까운 추천을 받았다.
특히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과 한배를 탔다는 점에 분노하는 반응이 상당했다. 자신을 '이대남'(20대 남성)이라고 소개한 한 지지자는 지난 10일 유튜브 생방송에서 이 대표에게 "이대남인데 반(反) 페미 버리고 페미 코인 타시는 거냐"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신지예(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영입할 때는 그렇게 반대하더니 지금은 그보다 더한 세력들과 연합한다는 게 참 웃음 벨이 따로 없다"는 반응도 포착된다. 이 대표의 지지자인 김모(31·남)씨는 "합당 소식을 듣고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그래도 젠더 노선은 확실하게 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연주 시사평론가는 한경닷컴과 통화에서 "이 대표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세를 합쳐야만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필요성에 의해 신(新) 개혁신당을 띄운 것이겠지만, 기존의 이 대표의 주 지지 기반이 상당히 흔들릴 가능성이 높고, 실체로도 나타나고 있지 않냐"며 "구(舊) 개혁신당이 신 개혁신당의 구심점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지지층 입장에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소위 이야기하는 '잡탕'이라고 이야기될 만하다. 기존 정당의 이념, 특성, 연령대 등 지향하는 바가 모두 다른 분들이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개문발차한 것 아니냐"며 "구 개혁신당에서 이 대표가 주도한 공약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폐지, 경찰·소방 공무원 여성 병역 의무화 등이 과연 이행될 수 있을까에 대한 현실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보수를 지키겠다'고 했던 탈당 직후의 변도 현재의 움직임과 일치하냐는 비판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지난 12~13일 CBS 라디오(박재홍의 한판승부,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개혁신당의 기존 구성원 중 누구도 개혁 보수적 가치관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바른미래당의 유승민과 이준석이 갑자기 진보가 됐던 것은 아니다"라고 보수 정체성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또 "(합당 논의 과정에서) 류 의원 거취에 대해 배제 의사를 밝히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류 의원의 젠더관에 대해 제가 동의하는 부분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