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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공급망 실사법 통과 난항 예상…부결되도 실사 체계 구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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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ESG] 이슈


EU 이사회가 9일(브뤼셀 현지시각)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 최종안 채택 여부를 표결한다. 지난달 31일 독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자유민주당은 CSDDD 최종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후 독일 정부가 EU 이사회 표결에서 기권할 예정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핀란드도 독일을 뒤따를 것으로 알려졌다. EU 언론과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면 스웨덴, 오스트리아, 에스토니아, 체코 역시 반대표를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2022년 2월 CSDDD 법안을 발표했다. EU에 진출한 모든 기업에 공급망 전반에 걸친 부정적 인권 및 환경 영향을 조사하고, 문제 발생 시 개선 조치를 이행하고, 이에 더해 예방하는 의무를 부과하기 위해서다. EU 이사회는 2022년 12월 협상안을 도출했고, EU 의회는 2023년 6월 법안을 채택했다. 그 후, 6개월여간 EU 이사회, 의회, 그리고 집행위원회가 3자 협상을 진행했고, 2023년 12월 14일 잠정 합의안이 도출됐다. 지난달 30일 최종 합의안을 마련했고 2월 9일 최종 표결을 앞두고 있다.

캐스팅보트 쥔 이탈리아

인구수에 따라 EU 이사회 투표에서 의사 결정 지분이 부여되는 만큼 만약 독일이 반대하고 일부 회원국이 추가로 이탈하면 CSDDD 채택이 연기되거나 무산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독일 자유민주당 소속의 재무장관과 법무장관은 반대 입장이지만, 사민당 소속인 노동장관은 자유민주당에 입장 선회를 요구하고 있다. 여러 언론 기사와 논평 등 독일 내 여론을 종합해 보면, 독일 산업협회 및 경제인연합회 등 산업계가 CSDDD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독일이 기권이나 반대하면 그간 CSDDD 도입에 우려를 직간접적으로 표명해 왔던 일부 회원국도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프랑스, 스페인, 베네룩스 3국인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는 찬성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결국, 최종 투표 결과의 향방은 이탈리아에 달려있는데 독일이 반대할 경우 이탈리아도 같은 선택을 할 것으로 판단된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반대하면, CSDDD 최종안 합의 도출에 실패하게 되고 재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이 경우 올해 6월로 예정된 EU 의회 선거 전 본회의는 4월 한 차례만 남아 있어 이번 회기 내 CSDDD 도입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부결되면 개별 국가법 충족해야

CSDDD가 부결되면 법안을 강력히 지지해 온 프랑스, 네덜란드, 베네룩스 3국 등은 자국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공급망 실사에 대한 개별 국가의 법률 제정은 우리 기업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밖에 없다. 실제, CSDDD 제정 취지 가운데 하나는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이미 공급망 실사법이 도입되었거나 도입 준비 중인 일부 EU 국가 간 상이한 법적 요건에 따라 커지는 기업의 부담을 경감시키는 것이다. CSDDD가 최종 부결되면 우리 기업은 개별 국가의 공급망 실사법을 충족해야 하는 부담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CSDDD가 지난 1월 30일 공개된 최종 합의안 대로 통과될 경우, 직원수 500명 이상이면서 전 세계 순매출액 1억5000만 유로(2148억원) 이상이거나, 직원수 250명 이상이면서 전 세계 순매출액 4000만 유로 이상인 기업 중 최소 2000만 유로의 매출을 고위험 산업(의류, 신발, 농업, 산림, 어업, 식품, 광업, 금속, 건설)에서 올리는 EU 기업과 EU 역내에서 발생한 순매출액이 1억5000만 유로 이상이거나 순매출액이 4000만유로 이상이면서 고위험 산업에서 2000만유로 이상의 매출을 올린 역외 기업이 CSDDD를 적용받게 되며, 아래 9개의 의무사항이 발생하게 된다.

△공급망 실사 정책 수립 (중장기적 접근방식, 이행 과정, 공급망 행동 수칙 등 포함) △공급망 리스크 평가 수행 (자기 사업장, 계열사, 공급망 대상, 리스크가 큰 경우 심층 평가 수행) △기후변화 전환계획(Climate Transition Plan) 수립 (직원 1000명 이상 기업에 해당, 1년 주기 개정) △피해 예방 및 리스크 완화 조치 시행 (행동강령을 계약서에 반영, 준수 여부 점검 등) △ 피해 예방 및 리스크 완화가 어려우면 구매 주문을 유예 혹은 계약 파기 조치 시행 △공급망 실사 시스템의 효과성 점검 (1년 주기) △고충처리제도 및 리스크 정보 수집 메커니즘 구축 △인권이나 환경적 영향을 야기한 경우, 시정할 수 있는 조치 시행 △실사 전 과정에 걸쳐 영향을 받는 관련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

실사 의무 및 지침 위반 시 발생한 피해자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해야 하며, 손해배상 의무의 소멸시효는 5년이다. 법 위반 시 전 세계 매출액의 최대 5%에 달하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막판 타협 가능성 있어

막판 타협 가능성도 열려 있다. 현재 CSDDD 최종안이 채택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오는 4월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정치적 타협에 성공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지난해 독일의 막판 반대로 폐기될 뻔한 내연기관차에 대한 2035년 이후 판매 금지 규제와 같이 EU 집행위원회의 중재로 CSDDD 최종안을 일부 개정하여 통과시키는 시나리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현재 최종안에 비해 다소 완화된 내용의 공급망 실사법의 통과가 예상되며, 우리 기업의 부담도 다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망 실사법 표결 결과에 따라 업계와 전문가 의견이 분분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몰락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표결 결과와 관계없이 배터리법(EUBR), 산림벌채금지법(EUDR),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이미 실행된 ESG 관련 법들이 공급망 정보 추적 및 실사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공급망 실사를 포함하는 구체적인 규제들이 시행된 상황에서 CSDDD가 통과되지 않아 공급망 실사 체계 구축에 대한 부담이 경감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오판일 수 있다. CSDDD는 공급망 실사 및 정보 추적성에 대한 포괄적 사항을 담고 있고, 산업별 공급망 실사 체계 구축 의무는 이미 부여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CSDDD 표결 결과와 관계없이, 이미 공급망 실사법은 시행됐다. 우리 기업의 공급망 실사 체계 구축이 더욱 시급한 이유다.

김동수 김앤장 ESG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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