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바이의 라이오스 왕은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는 신탁(神託)을 듣고 아들을 산속에 버렸다. 신탁이란 사람이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신에게 물어보는 것을 말한다. 국내 무속신화인 바리데기 신화에선 오구대왕이 올해 혼례를 올리면 일곱 딸을 볼 것이란 예언을 듣고 실제로 일곱 번째 딸을 낳게 되자 아이를 버린다. 이처럼 동서양을 불문하고 신화에는 신의 예언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동시에 그것을 회피하려고 하는 모습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국내 대표 신화학자 중 한 명인 조현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62·사진)는 이 같은 이야기의 원형에 ‘신탁 콤플렉스’란 이름을 붙이고 최근 같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조 교수는 대학가를 비롯한 번화가에서 타로 카페 등 일종의 점술업이 성업하는 것을 보고 신탁에 대해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7일 서울 신림동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그는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나 힘든 일이 생기면 점을 보러 가는 게 낯설지 않을 정도로 점복 문화가 일상화돼 있다”며 “왜 우리 사회는 이토록 신 혹은 예언자의 말에 집착하고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이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 교수가 처음 개념화한 ‘신탁 콤플렉스’는 신탁에 집착하면서도 회피하는 행위가 오히려 그것을 실현하게 만드는 역설을 가리킨다. 그는 책에서 ‘바리데기’ ‘도랑선비 청정각시’ ‘꼬댁각시놀이’ ‘심청가’ 등 우리 신화와 전설 속에서 신탁이 인간의 불행을 경고하고, 이 경고가 인간을 불안하게 하면서 신탁에 의존하게 만들어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공통적인 이야기 구조를 발견했다.
신탁은 불안을 먹고 자라고, 권력과 만나 힘을 얻는다. 조선 후기 명성황후는 한 무녀를 궁에 들여 진령군이란 작호까지 내렸다. 무녀는 명성황후가 임오군란으로 피신했을 때 점을 쳐주며 신의를 얻었다. 조 교수는 “심리적인 불안 상태에서 점술이 실제와 우연히 일치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것에 빠져들게 된다”며 “점술업이 점점 더 성행하는 것도 우리 사회 불안이 더욱 심화하는 영향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신탁이 유발하는 불안과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자는 게 조 교수가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그는 우리나라 신화에서 서양과 달리 신탁에서 벗어나려는 이른바 ‘탈신탁’의 이야기도 발견했다.
조 교수는 “유일신이 절대적 존재인 서양과 달리 우리 신화에선 ‘삼공본풀이’의 가믄장아기, ‘세경본풀이’의 자청비 등 신탁에 맞서면서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캐릭터가 다수 등장한다”며 “신탁이 일상을 방해할 정도로 작동할 때 신탁 콤플렉스는 실체를 얻지만,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 앞에선 신탁보다 개인의 의지가 힘을 얻게 된다”고 강조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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