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공장과 물류센터 사이의 배송을 책임지는 미들마일 시장의 변화가 가장 극적이다. 이 분야는 최근까지도 화주가 전화를 걸어 화물을 접수하고, 견적과 배차 정보도 수기로 작성했다. 하지만 물류 혁신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업무 프로세스가 조금씩 효율화되는 모습이다.
○화주-차주 플랫폼서 연결
7일 업계에 따르면 물류 스타트업 로지스팟은 화주에서 차주로 연결되는 과정을 플랫폼을 통해 압축했다. 화물을 보내는 화주가 주선사에 제품 배송을 의뢰한 뒤 주선사가 정보망사를 통해 차주를 구해 배송을 위탁하는 구조를 단순화한 것이다. 화주가 로지스팟 앱으로 배차를 신청하면 AI 알고리즘을 통해 차주가 바로 선정된다. 운임도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정해진다. 그동안 화물 종류와 날씨 등에 따라서 매번 달라졌던 운임이 알고리즘을 통해 산정돼 차주의 불확실성이 줄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로지스팟의 매출은 1700억원으로 2022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로지스팟 관계자는 “대부분의 계약이 전화와 팩스, 이메일로 이뤄지는 미들마일 영역에 정보기술(IT)을 도입해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화주에겐 물류비를 최적화하고 차주에겐 공차 거리를 최소화해 월수입을 극대화고 있다”고 말했다.
로지스랩은 화물운송료 청구와 정산, 전자세금계산서 발행, 차량별 비용처리 등 모든 과정을 디지털화했다. 운송료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지급 서비스도 제공 중인데 현재 620억원 규모로 출시 초기(48억원)에 비해 11배 이상 성장했다. 로지스랩으로 운송료를 지급받는 차주는 3만 명이다. 화물차 기사 박모씨는 “정보망사에 미지급 운임과 관련해 문의하려 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로지스랩 등장 후 운임을 떼먹히는 일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미들마일 시장 규모는 37조원 이상이다. 미들마일 시장엔 화주와 주선사, 정보망사, 차주 등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국내 화물 차주만 43만 명. 주선사는 1만2000여 개가 있다. 대부분이 영세 업체로 모든 계약과 정산 등은 수기로 이뤄지며 디지털 혁신을 할 여력조차 없다. 온라인 쇼핑이 매년 늘면서 국내 물류 시장은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지난해 227조3470억원으로 2019년(136조6008억원) 대비 66.4% 증가했다. 시장조사 업체 TMR은 올해 글로벌 물류 시장 규모를 14조1000억달러로 예상했다.
○자율주행 트럭으로 화물 운반
자율주행 차량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업체도 있다. 트럭 자율주행 스타트업 마스오토는 지난해 3월부터 15t 이상의 자율주행 트럭으로 미들마일 간선운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레벨3 자율주행으로 운전자 개입이 크게 필요 없다. 누적 자율주행 거리는 100만㎞ 이상이다. 파트너사인 이마트와 롯데, CJ대한통운 등의 화물을 배송한다. 마스오토는 자율주행 세미 트레일러 시범 운행을 계획 중이다.마스오토는 승용차 시장과 달리 자율주행이 보급되지 않은 미들마일 시장을 노렸다. 2017년 KAIST 전산학부 출신들이 모여 창업에 나섰다. 노제경 마스오토 부대표는 “미들마일 노선에서 고속도로가 차지하는 비중은 97% 이상”이라며 “차선이 꼬여 있는 일반 도로보다 자율주행을 적용하기 굉장히 용이한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율주행 트럭을 10대 운영하고 있는데 2025년까지 40대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카카오T트럭커를 출시하면서 지난해 10월 미들마일 시장에 진출했다. 화물차 톤수와 화물 종류, 선호하는 상·하차지 등을 고려해 차주 개인별로 맞춤화된 주문을 받을 수 있다. 둘 이상의 운송 주문을 묶어 경유하는 복화 운송 기능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복화 운송이 출시되면 공차율이 낮아져 기사의 근무시간당 수익이 높아지게 된다”며 “주선사와 화주의 배차 성공률도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KT(브로캐리)와 LG유플러스(화물잇고), CJ대한통운(더 운반) 등도 화주와 차주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을 출시해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주선사·정보망사와 협력해야
미들마일의 최종 목적지인 물류센터에선 로봇이 상품을 옮기고 있다. AI 물류 스타트업 파스토는 스마트물류센터에 자율주행 로봇을 도입했다. 지난해 250만 건의 주문을 로봇이 처리했다. AI가 상품별로 최적의 포장 박스를 추천하고 가장 효율적인 재고 수량을 알려준다. 파스토 관계자는 “물류센터는 다른 산업 대비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한 곳으로 최근 들어서야 디지털화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혁신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우아한청년들은 미들마일부터 라스트마일을 통합해 관리하는 올인원 인프라 물류시스템을 구축했다. 소비자 생활권에 도심형 물류센터를 세워 시장 수요를 예측, 분석하면서 재고를 관리해 비용을 최소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화주와 차주 사이의 주선사 등이 수수료 장사를 해오면서 미들마일 시장을 독점하고 혁신을 막아왔다고 보고 있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교수는 “독점적 지위에 놓인 미들마일 시장 참여자들이 그동안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혁신적인 플랫폼 등의 진입을 거부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스타트업에는 혁신할 분야가 넘쳐나는 시장”이라며 “물류 배송의 효율화 등을 위해서라도 미들마일 혁신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류 기업들은 기존 시장 참여자들과 협업을 통해 시장을 키우고 있다. 로지스랩 관계자는 “기존 사업자는 현재 방식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기술과 아이디어를 제공해 기존 사업자가 수익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면서 혁신을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주선사연합회와 함께 플랫폼을 개발해 기존 시장 참여자들과 상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강호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