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정보기술(IT) 기업 네이버는 실적, 기업설명회 개최 등을 공시할 때 기업설명(IR) 담당자 이름과 연락처 등을 기재하지 않는다. 실적 공시에는 네이버 대표번호를 기재하는데 이 번호로 전화해 IR 담당자를 바꿔 달라고 해도 통화는 할 수 없다. 한 전문가는 “네이버가 2022년 미국의 중고품 거래 플랫폼 포시마크를 인수할 때 포시마크 공시에 네이버 IR 담당자의 이름과 휴대폰 번호가 기재돼 있었다”며 “국내 기업이 투자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IR 하는 회사, 4분의 1 미만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 중에는 꼬박꼬박 현금을 벌어들이는 ‘현금 부자’ 기업이거나 특정 분야의 독점적 지배력을 갖춘 기업인데도 주주와의 소통에 적극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렇게 장기간 이어진 일부 기업의 ‘주주 푸대접’ 관행이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의 상당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기업의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인 연간 실적 공시 후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거나 증권사 애널리스트 및 언론 취재 요청, 주주의 IR 개최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는 기업이 대표적이다. 기업공개(IPO)를 해 일단 주주의 돈을 끌어모은 뒤에는 주가 관리를 하지 않아도 회사 운영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다는 속내에서다.
상장 기업의 기업설명회 개최 건수에서도 이런 관행이 잘 나타난다. 해외 주요 증시의 기업설명회 개최 비중은 통상 30~40%를 웃돈다. 하지만 우리 증시에선 지난해 상장사 전체의 23.5%만 관련 행사를 열었다. 이마저도 2019년 24.5%에서 떨어진 것이다. 개인 투자자 비중이 높은 코스닥시장에서 IR 개최 비중이 이 기간 25.4%에서 20.4%로 하락한 영향이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실적 발표를 하며 투자자를 위해 다음 분기 가이던스(기업 자체 전망치)를 함께 제시하는 기업이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하는 기업이 몇 군데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비공개 IR 미팅에서 중요한 내용을 풀면서 이 내용을 공정 공시하지 않는 기업도 많다”고 귀띔했다.
증자할 때만 주주 찾는다는 지적도
시가총액 상위권 기업도 투자자에게 소홀하기는 마찬가지다. 반도체 장비주 HPSP(코스닥시장 시총 6위), 엔켐(7위), 이오테크닉스(12위) 등은 2018년 이후 IR 행사를 한 적이 없다. 바이오기업 헬릭스미스는 일반공모 증자를 한 2021년까지는 1년에도 여러 차례 IR 행사를 했지만 지난해에는 한 차례도 관련 행사를 열지 않았다.이런 사례는 최근 주가가 급등한 에코프로와 대비된다. 에코프로는 지난해 주가가 급등하기 전에도 매 분기 한 차례 이상씩 주주 대상 기업설명회를 열었다. 김성홍 에코프로 전무는 “회사가 자본시장에서 수천억원을 조달해 그 돈을 기반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주주들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고 했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투자자를 위한 정기 설명회와 분기별 실적에 대한 설명 자료 배포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