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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기업인 볼모로 잡는 수사 관행 바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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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건은 여러 총수의 배임 사건 중 하나일 뿐입니다. 무죄가 나왔다고 검사가 책임지고 그럴 일은 아니죠.”

지난 5일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재판 1심 선고가 나오기 직전 만난 검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면 검찰 조직과 담당 검사가 타격받을 것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대수롭지 않다’는 투였다. 정말로 1심 재판부의 무죄 선고 이튿날 검찰은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했다. 이 회장 판결을 대수롭잖게 여기는 검찰과 달리 일선 산업현장에서는 가슴을 졸여야 했다. 판결 결과에 따라 투자 속도와 규모가 달라지고 이는 산업계 종사자들의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루 3만여 명이 투입되는 경기 평택시 삼성반도체 5공장 건설 현장에서는 ‘유죄 판결이 나오면 타워크레인을 철수(사업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19개 혐의를 모두 부정한 1심 결과를 두고 일각에선 검찰의 창이 무뎌지고 로펌의 방패가 강해진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애초부터 번지수를 잘못 짚은 기소였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2020년 6월 이 회장의 불법 승계 의혹에 대해 ‘수사 중단 및 불기소’를 권고했다. 14명의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수사심의위는 이 회장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게 어렵다고 봤다. 1심 판결의 판단과 비슷하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이런 권고 내용을 무시하고 두 달 뒤 기소를 밀어붙였다. 앞서 다른 8건의 수사심의위 결정을 검찰이 모두 수용한 것과 비교해봐도 이례적인 기소였다. 처음부터 ‘답정너’ 수사였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검찰은 고발이 들어오면 수사할 수밖에 없고, 한 번 시작된 수사는 ‘끝장’을 볼 때까지 가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도 법원의 1심 무죄 판결 직후 항소를 예고했다. 이 회장은 대법원 판결까지 앞으로 3~4년은 더 법원을 드나들어야 할 것이다.

안팎으로 치열한 경쟁 상황에 처한 가운데 이사회 결정으로 인해 1심 판결까지 수년이 걸리는 하세월 소송으로 기업과 기업가의 에너지가 소진되고 있다. 중대 잘못이 아닌 이사회의 경영 판단을 일일이 법정에서 해명하고 소명해야만 버틸 수 있다면, 누가 기업을 하겠는가.

거물급 수사는 검찰 조직의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권력 그 자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면 기업인 수사에 합리적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다. 경영진이 시간을 법정 공방에 써버린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과 주주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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