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를 주로 다루는 정책 관료들은 세금과 재정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편이다. 정책의 목표인 성장률 제고를 위해 세금 깎아주고, 돈 푸는 건 당연하다는 게 기본 생각이다. 경제관료 38년간 세제 예산 재정은 거치지 않고 정책만 했던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예외는 아니다. 최 부총리는 지난달 한경밀레니엄포럼에 나와 스스로 고백했다. “과거 정책을 짤 때 솔직히 건전재정이란 단어에 반감을 가지기도 했다. 돈을 써야 경제가 사는데, 돈을 안 쓰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 이거였다.”
부총리가 된 그는 과연 달라졌을까. 그가 취임하고 나서 최근 한 달간 정부가 쏟아낸 정책 중 상당수는 감세와 관련된 것이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시설투자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혜택 확대,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상향 등 숫자를 세보면 대략 20개에 달한다. 정부는 올해 세수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시행 후 실제 세수에 영향을 주는 내년 이후부턴 세수 감소 효과가 연간 2조5000억~3조2000억원에 달할 것이란 게 국회예산정책처 등의 추산이다.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펑크(56조4000억원)를 냈고,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에 육박한 상황에서 잇단 감세안 발표는 이 정부가 국정과제로 제시한 건전재정 원칙을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 나올 만하다. 이런 비판에 더불어민주당도 숟가락을 얹어 ‘감세 포퓰리즘’이라고 싸잡아 공격하지만, 지난 정부 때 정권을 잡은 그들이야말로 진짜 포퓰리즘으로 재정을 망가뜨린 원죄가 있으므로 그리 주장할 자격은 없다.
건전재정 위협에 대한 정부의 방어 논리는 ‘낙수효과’다. 기업과 가계의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 소비가 늘어나 내수가 활성화되고 이는 중장기적으로 세수 증대→건전재정으로 이어질 것이란 낙관론이다.
이론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 감세는 경제 성장에 플러스 효과를 낸다. 물론 성장률이란 게 여러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인 만큼 감세가 곧바로 성장으로 이어지는 정비례 관계가 무조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재정 투입과 마찬가지로 감세 역시 정말 필요한 타이밍에 필요한 곳에 사용하는 이른바 ‘적시적소’(right time, right place) 원칙이 맞아떨어져야 효과를 극대화한다.
하지만 최근 잇따라 발표한 감세안들이 정부 의도대로 경기 진작 효과로 이어질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다. 예컨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는 가계 자산을 늘려줘 소비로 이어지게 하자는 것인데, 이는 금투세 폐지 효과로 투자자가 대거 유입돼 주가가 올라야 성립되는 논리다. 주가 역시 여러 시장 변수의 총합인 만큼 세금 유인책 하나로 오르진 않는다.
이들 감세안은 한 번 시행하면 복지처럼 후퇴하기 어려워 경직성을 갖는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 때문에 최근 내놓은 감세안들이 정부 주장대로 세수 감소 영향이 크지 않더라도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지속적으로 재정 부담을 키운다는 점에서 위험성은 다분하다.
기획재정부 출입기자 시절 매년 단골로 썼던 기사가 ‘비과세·감면 대폭 구조조정’이다. 하지만 이게 지켜진 적이 한 번도 없다. 정부가 세제개편안에 넣어 국회로 넘기면 국회에서 되살리기 일쑤다. 기자들 입장에선 양치기 소년이 된 기분이다. 비과세·감면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감세 효과가 크지 않지만, 수혜자가 정해져 있고 보조금처럼 지급돼 한 번 혜택을 주면 줄이기 어렵다. 이렇게 해서 매년 늘어난 비과세·감면이 누적으로 70조원에 육박한다.
가계 살림을 보태준다는 명분이야 좋지만, 이런 식으로 찔끔찔끔 감세 조치를 남발하는 것은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란 원칙에도 어긋난다. 시장을 옹호하는 정부라면 조세 원칙부터 바로 세우고 일관된 정책을 펴야 마땅하다. 지난 정부가 이른바 ‘정의로운 세금’을 외치며 부자에게 돈을 뺏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로빈후드식 증세’에 나서 조세 정책을 누더기로 만들고 왜곡한 것을 바로잡는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법인세처럼 국가 간 경쟁이 붙어있고, 직접적으로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는 세금은 지속적으로 낮춰가되, 단기 시혜성 감세는 최소화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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