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맛>의 주인공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요리 비평가’다. 그런 만큼 각종 진귀한 음식부터 시골 밥상의 수수한 음식까지 수많은 요리를 섭렵했다. 갖가지 재료와 그 재료에 풍미를 더하기 위한 향신료와 조미료, 다채로운 요리 방법, 각기 다른 분위기를 지닌 식당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이쯤에서 소설의 분위기를 파악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소설의 주인공, 최고 요리 비평가의 수명이 단 48시간 남은 상황이 추가되어야 한다. 주인공은 심장병으로 인해 이틀 후면 죽는다는 선고를 받았다.
마음의 열쇠를 쥐고 있는 맛
유명하고, 맛있는 음식을 넘치게 먹었고, 칼 같은 비평을 여지없이 말해 수많은 사람을 울고 웃게 만든 68세의 남자가 48시간 안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그는 ‘죽기 전에 마음속에 떠도는 하나의 맛’을 기억해내고 싶어 한다. 어린 시절이나 사춘기 시절의 맛, 궁극적인 진리와 마음의 열쇠를 쥐고 있는 맛, 그 맛이 무엇인지 찾고 싶은데 떠오르지 않아 가슴 조리는 것에서 소설은 시작한다.2000년에 출간된 <맛>은 프랑스 여성작가 뮈리엘 바르베리가 쓴 첫 소설이다. 이 책은 최우수 요리문학상과 바쿠스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 10개국 이상에서 출간되었다. 두 번째 소설 <고슴도치의 우아함>이 113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32개국에 번역, 출간되면서 뮈리엘 바르베리는 세계적 관심을 받는 작가 대열에 올랐다. 출간하는 책마다 큰 사랑을 받아 가디언 선정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작가 5인’에 포함되었다.
<맛>은 29개의 짤막한 글로 구성된다. 모든 글은 1인칭인데, 대부분 비평가의 회상이지만 아내나 고양이·의사 등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해 죽음을 눈앞에 둔 비평가와 얽힌 사연과 회한을 토로한다.
침대에 누워 있는 최고의 비평가는 지난 시간을 반추하며 ‘마음속에 떠도는 하나의 맛’을 떠올리려고 애쓴다. 평범한 재료로 기적의 맛을 만들어내던 할머니의 주방, 20년 동안 단골이던 마르케의 레스토랑, 놀라운 자연을 일군 이모의 채소밭, 데트레르 삼촌이 만들어내는 천국의 맛을 차례로 떠올린다. 하지만 자신이 찾고 싶은 궁극의 맛은 아니다.
맛을 찾아가면서 그간 접한 음식들을 논하는 솜씨가 최고의 비평가답게 비상하다. “고기는 남성적이고 강하지만 생선은 낯설고 잔인하다” 같은 규정은 새롭지만 “가장 미천한 고등어부터 가장 세련된 연어에 이르기까지 구운 생선의 살에는 문화를 벗어나는 무엇인가가 있다”리는 표현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제라늄잎에 대한 설명은 한마디로 현란하다.
“오만한 신내가 코를 찌르지만 절인 레몬의 섬세한 쌉쌀함을 연상시킬 만큼 강하지는 않은 시금털털한 이파리, 여기에는 파렴치함과 과일 향을 한꺼번에 지닌 토마토잎의 신내가 살짝 가미되어 있다.”
순수한 시기의 선물 ‘평온’
굴을 “관능적이리만치 황홀한 매끄러움”, 회를 “폭신함도 물컹함도 아닌 말랑함, 비단 같은 우단 먼지, 구름이 갖지 못한 우유의 밀도”로 표현하는 <맛>을 접하고 나면 웬만한 음식 비평은 시시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나는 저열한 상술을 합리화하기 위해 신비가 없는 곳에서 신비를 만들어냈다. 도대체 쓴다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화려한 비평일지라도 핵심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고 진실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며, 단지 유명해지는 즐거움에 종속되어 있을 뿐인데”라는 회한 앞에서 독자들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침대에서 숨을 몰아쉬는 유명한 비평가에게 돌연 그렇게 찾고자 한 맛이 떠오른다. 열다섯 살 때 학교에서 허기진 배를 안고 나오면서 먹었던 슈케트. 고급 과자점이 아닌 동네 슈퍼에서 팔던, 수증기에 엉겨 붙은 설탕이 뭉쳐져 있던 그 과자. 그는 그 과자를 떠올리며 “그때 내겐 마음의 평온이 있었다”고 읊조린다. 그 순간 그 ‘평온’이 바로 자신의 저작 모두에 ‘잔인하게’ 결핍된 것임을 깨닫는다.
열심히 글을 쓰며 비평가로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그가 죽음의 목전에서 만나고 싶었던 맛은 열다섯 살의 순수였다. 하나 남은 슈케트를 자신의 모든 저작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평가의 회한을 통해 맛과 인생, 삶의 가치를 음미하게 된다. 복잡하면서 의미 있는 생각을 불러오는 책이다.